“우리나라 영화산업이 90년대 비디오테이프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 ‘오징어게임’과 같은 K-콘텐츠 열풍은 나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OTT 플랫폼으로 산업구조 개편이 이뤄지면서 얻을 수 있던 성과라고 볼 수 있죠.”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글라우드(gloud) 지진우 대표는 우리나라 치과 의료서비스는 세계 최고수준인데도 수출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이같이 예시를 들며 설명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콘텐츠가 좋아도 산업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글로벌 마켓으로 나가는 것은 힘들다는 말이다. 이에 지 대표는 전반적인 의료산업 구조를 개편해 의료서비스 업그레이드는 물론,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치과 디지털진료 전환솔루션이다.
공학도의 눈으로 바라봤더니 ‘IT 강국’과 동떨어진 치과계
컴퓨터공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지진우 대표는 학부시절 IT 회사를 설립했던 창업가였다. IT 관련 기업을 창업할 정도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열망이 컸지만, 의사가 돼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치과대학에 진학한 케이스다. IT 기반의 구조에 익숙했던 지 대표는 의사가 된 후, 막상 로컬에 나와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의료기술 수준은 전 세계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치과, 미용, 성형 분야는 전 세계에서 넘볼 수 없는 수준이죠. 이에 반해 산업구조는 의료기술 수준을 못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2013~2014년만 하더라도 치과의 70~80%가 종이차트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현재도 50% 정도가 종이차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설사 전자차트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보험진료용으로만 활용하는 경우도 있죠. 산업유통 역시 오프라인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일례로 치과에서 의료용 레이저장비를 구매하는 방식이 대부분 방문판매 형식이고, 장비 관리 역시 모두 수기로 이뤄졌습니다.”
물론, 의료분야는 사람을 치료하고, 더 나아가 생명을 다뤄야 하므로 혁신적인 기술이 쉽게 용인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의료기기 역시 마찬가지다. 성능보다 더 중요한 것이 ‘검증’이기 때문에 적어도 10여 년의 시간은 흘러야 의사들의 신뢰를 살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구조 자체가 의료시장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치과의료기를 사용하다 기술적인 지원을 받고 싶어도 엔지니어 팀 구성이 약하기 때문에 판매사원이 와서 설명하거나, 기술적인 면을 담당하는 직원과 논의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다.
지 대표는 이런 구조적인 개선이 이뤄지면 우선 의료비용을 낮출 수 있을 거라 봤다. 인적 자본으로 이뤄진 서비스에는 비용이 더해지므로 산업구조 자체를 바꾸면 의료의 생산비용은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병원의 매출 증가로 이어지고, 장기적으로는 진료비를 포함한 의료서비스 비용을 낮출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생산비용 단가의 차이로 쉽지 않았던 제3세계에 의료서비스를 보급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할 수도 있다.
“산업구조 개편되면 의료서비스 해외 수출도 원활해질 것”
중요한 것은 이렇게 산업구조가 개편되면 몇몇 의료서비스들은 해외로의 수출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치과를 예로 들었을 때, 보철치료와 같은 치기공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의료기기도 마찬가지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산업구조를 개편한다면 지금보다 더 큰 경쟁력을 확보해 훨씬 빠른 속도로 시장 규모를 확대해나갈 수 있다. 지 대표는 산업구조 전반을 바꾸기 위한 첫 스텝으로 ‘치과 디지털진료 전환’ 솔루션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보철’ 파트에 집중했다.
“기본적으로 페이퍼 기반의 의료산업을 디지털 기반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현직 의사들이 활용하고 있는 부분을 공략해야 합니다. 의료행위에서 디지털을 가장 많이 쓰는 분야는 전자차트거든요. 다행히 치과에서는 디지털을 쓰는 분야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3D 구강스캐너입니다.”
치과에서 보철치료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본을 뜨기 위해 고무 재질로 된 분홍색 뭉치를 입에 물었던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요즘에는 더 정밀하게 치아 모형을 채득하기 위해 3D 구강스캐너를 사용하는 치과가 늘었다. 국내 치과 3D 구강스캐너의 보급률은 15~20%다. 하지만 이마저도 절반은 사용하지 않는 곳이 많다. 지 대표는 그 이유가 ‘생각보다 쓰기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휴대폰을 예로 들면 카메라 버튼이 중요한 게 아니고, 이 휴대폰으로 어떻게 하면 사진을 더 예쁘게 찍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 포인트거든요. 스캐너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캐너를 진료에 활용하는 문제는 다른 문제입니다. 정립된 방법이 없고, 다양한 길들이 있기 때문에 결국 의사의 역량인 셈이죠.”
2년간 개발과정 거쳐 ‘저스트스캔’ 출시…글로벌 시장 목표
지 대표는 치과의사 입장에서 쓰기 편한 UX를 만들기 위해 1년간의 사업구상을 거친 후 개발에 들어갔다. 1년이라는 시간을 꼬박 더 써 300페이지에 달하는 설계문서를 개발팀에 전달했다. 의료진이 원하는 UX를 만들기 위해 현직 치과의사에게 테스트해보면서 대시보드 UX 수정작업만 90번 이상을 거쳤다. 이렇게 2년간의 준비 끝에 나온 솔루션이 ‘저스트스캔(Just Scan)’이다.
저스트스캔은 치과의 디지털진료 환경 구축을 원활하게 돕는 역할을 한다. 디지털 치기공과 통합된 환경이기 때문에 이전보다 적은 시간과 인력, 비용만 투입해도 쉽게 진료할 수 있다. 특히 환자 상담-엑스레이 촬영 및 진단-환자데이터 체크-치아 디자인 및 생산 등으로 이어지는 진료 플로우가 유기적인 흐름을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이다. 또한, 구강 사진, 엑스레이, 스캔 파일 등의 자료들을 온라인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고, 방사선 장비와도 연동돼 있어 원클릭으로 전송된다. 게다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제작한 보철보다 재제작이 80% 감소하는 등 정확도도 높였다.
지 대표는 변화하는 시대에 디지털 도입은 꼭 필요하지만, 자금 문제와 디지털 기기의 활용 능력에 대한 우려 등으로 여전히 도입을 망설이는 치과 개원의에게 이만한 솔루션은 없다고 자신했다.
“디지털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적어도 4~5억원이 들어가거든요. 치과 개원비용과 맞먹는 금액입니다. 게다가 요즘 치과박람회에 가면 대부분의 의료기기가 디지털로 전환하는 추세예요. 구입비용뿐만 아니라 유지비용부터 전문인력 고용까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저스트스캔은 기계 구입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구독형으로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용법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웹베이스에 워크플로를 명료하게 녹였고, 디지털 보철제작 전문가들이 디지털진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맞춤 교육도 진행합니다.”
이런 강점으로 인해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미국, 캐나다에 있는 병원·기공소, 병원을 운영하는 그룹 등과 작년에 4~5번의 미팅을 진행했고, 중국과 대만에서도 지속해서 미팅 관련 연락이 오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치과의사들도 반기는 분위기다. 특히 개원한지 얼마 안 됐거나 이제 막 개원한 치과의사들의 관심이 높다. 서비스는 작년 12월1일부터 시작했지만, 실제 서비스 시행시기는 12월20일인데, 설 연휴를 제외하고 두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약 40개의 치과를 활성화했다.
지 대표는 앞으로 이런 디지털 플로우를 상담분야에도 접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환자 입장에서는 어떤 상담을 받았는지 기록에 의해 명확히 알 수 있고, 더 다양한 정보를 받을 수 있어 좀 더 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상담을 제공하는 병원에서도 서류를 일일이 찾는 노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앞으로 의료데이터뿐만 아니라 기자재, 의료서비스를 온라인화해 글로벌 유통이 가능해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주요 마켓이나 타깃을 해외로 두고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치과의료 수준이 높은 만큼 한국에서 검증받으면 해외시장에서의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거든요. 앞으로 글라우드는 병원, 환자, 의료기기 및 지원 서비스 공급자들의 연결을 통해 구축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의료산업을 개혁해나갈 것입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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