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긴 것도 없는데 왜 내 가방은 항상 무겁고 뚱뚱한 걸까.”
대다수의 여성은 늘 이런 의문점과 함께 외출 길에 나서곤 한다. 사실상 현금이 사라진 세상에서 챙길 것이라곤 스마트폰과 카드가 전부인 지금이지만, 여성들은 항상 일정 크기 이상의 가방을 들고 다녀야만 한다. 바로 화장품을 넣고 다니는 ‘파우치’ 때문이다.
이런 여성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세상에 나온 브랜드가 있다. 브랜드 늘너(NEUL'ER)를 운영하는 ㈜늘팩토리 박유빈 대표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코스메틱에 대한 소신과 브랜드의 비전을 밝혔다.
박유빈 대표는 “아직도 많은 여성이 파우치를 무겁게 들고 다니며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내 꿈은 이런 무거운 파우치를 슬림하고, 가볍게 만드는 것”이라며, “콤팩트(compact) 뷰티 카테고리 브랜드가 늘너 뿐만이 아니라 타 브랜드에서도 나와 이 시장 파이 자체가 커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번 베어 물면 입술 완성, 지갑에도 쏙…숏폼 1000만뷰 ‘신박템’
지금의 ‘늘너’ 브랜드를 있게 한 주인공은 립스틱 카드로 유명한 ‘립카’다. 이 아이디어 제품 하나로 SNS 숏폼 조회수 1000만뷰를 이끌어냈고, 인플루언서들의 소개가 이어져 저절로 바이럴이 돼 마케팅 비용 없이 판매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협찬한 적이 없는데도 방송에까지 소개될 정도였다.
국내외에서 ‘신박하다’는 반응을 끌어내며, 트렌드 세터의 관심을 받은 브랜드 ‘늘너’는 박유빈 대표가 일상생활 속에서 겪은 불편함을 개선하려다 우연한 기회에 탄생했다.
박 대표는 “평소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지만, 립스틱을 바르지 않으면 아파 보이는 것 같아 항시 립스틱을 들고 다니며 챙겨 발랐다. 하지만, 립스틱 하나 때문에 파우치를 챙기거나 가방을 챙겨야만 했다. 립스틱을 주머니에 넣어보려고도 시도했지만, 그 부분만 불룩하게 튀어나와 보기에 좋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평소 무겁게 하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는 ‘지갑 안에 립스틱을 넣고 다닐 수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됐고,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여성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 아이템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제품이 ‘립카’다.
박 대표는 “처음부터 립스틱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생활 속의 불편한 점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였다”며, “특허정보검색서비스인 키프리스(kipris)에 들어가 나와 같은 아이디어로 개발된 제품이 있는지 찾아봤다. 하지만, 립스틱카드 아이템으로 특허를 낸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특허사무소를 찾아가 특허를 내고 싶은 아이템을 설명했더니 변리사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 변리사가 이 아이템은 정부지원금까지 받을 수 있는 사업성이 높은 아이템이라고 추천해 줬다. 그때 정부지원금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며, “운이 좋게 이 특허 아이템으로 여성벤처협회가 주관하는 예비창업패키지 등 정부지원사업에도 선정되고, 투자도 받아 판매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앙~’하고 한 번만 물어주면 입술 화장이 완성되는 혁신적인 사용감과 지갑에도 쏙 들어가는 얇은 카드 형태의 립카는 와디즈 펀딩에서 2~3일 만에 1200만원의 매출을 올리며 총 펀딩모금액 2400만원을 끌어모았다. 당시 3만8000원이었던 제품 가격을 감안할 때 엄청난 화제에 올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제품을 정식 출시했던 2020년 12월에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인 아이디어스(idus)에서 이틀 만에 700~800만원의 매출을 내며 메인 배너에 들어가는 쾌거를 이뤘다. 이외에도 자사몰과 네이버스마트스토어, 와디즈에서 진행한 팝업스토어에서 판매하며 이름을 날렸다.
박 대표는 “코로나19로 인해 립스틱을 많이 사용하지 않던 시기였는데도 불구하고 3040 여성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줬다”며, “당시 유튜브를 통해 고객과도 직접 컨택했었는데, 많은 고객이 응원해 줬다”며 감사함을 표했다.
해외에서도 바이럴은 이어졌다. 2021년 8~9월에는 동남아 중심의 이커머스 플랫폼 쇼피와 아마존 등 해외 플랫폼에도 선보였다. 해외로 진출할 때는 여러 유통 관련 플랫폼을 거치다 보니 가격이 거의 10만원대로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신기하다’, ‘진짜 얇다’ 등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높은 판매율을 보였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5~6년 화장대 속에 굴러다니는 립스틱…“위생 중요한데”
립카는 편리성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았지만, 위생적으로도 우수함을 자랑한다고 박유빈 대표는 소개했다.
생물학을 전공한 박 대표는 이전에 항암치료제를 만드는 제약회사에서 4년 넘게 연구원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당시 회사는 화장품 원료도 개발해 납품했었는데, 박 대표는 품질관리(QC) 및 품질검증(QA)을 하는 부서에서 일하며 화장품 원료로 나가도 문제가 없는지, 미생물 관련 문제는 없는지 등 품질을 검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화장품 위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박 대표는 “직업상 미생물 실험을 하다 보니 엄청난 양의 미생물을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화장품의 미생물 오염을 막기 위해서는 보존제를 넣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주 교체해 주는 거다. 립스틱의 경우 개봉한 지 3개월 정도 지나면 다 쓰지 않았더라도 다른 제품으로 갈아주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가정관리사 자격증도 딸 정도로 평소 청소와 정리 및 수납하는 것을 좋아하는 박 대표는 립카에 이런 자신의 위생 관념을 넣었다. 0.4g의 립카는 일반 립스틱보다 10배 정도 적은 양이다. 매일 바른다고 가정했을 때, 한 달 정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후부터는 안의 내용물만 교체해 주면 된다. 가격은 첫 출시 때보다 내려간 1만9800원이며, 리필가격은 2900원이다. 즉, 한 달에 한 번씩 교체해 주는 것이 본질적으로 더 위생에 좋다는 평소 그의 지론이 반영된 것이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제품으로 출시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박유빈 대표가 립카의 시제품 생산을 위해 OEM, ODM 회사들을 찾아갔지만, 보수적인 시장 환경상 립카 아이디어 자체에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형 화장품 회사에서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제품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표는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직접 제조소를 차렸다고 한다. ‘어차피 회사에서도 관련 일을 했었는데 못할 게 뭐가 있나’라는 생각으로 뛰어든 것이다. 강원도 원주시에 20평(약 66.1㎡) 규모로 화장품을 생산할 수 있는 제조시설을 만들고, 제품 케이스 생산을 위해 베트남 현지 공장까지 직접 발로 뛰며 찾아가 제품생산을 이어갔다. 지금은 제조를 맡아 진행해 줄 제조사를 구했지만, 박 대표는 1년6개월간 제조소를 운영하며 화장품 제조 환경을 더 깊숙하게 알게 됐다고 한다.
달걀 모양 비누·방향제로 브랜드 확장 노린다…소비자 선택권 확대
블랙, 블루, 딥핑크 세 가지 컬러의 케이스와 20여 가지가 넘는 립스틱 색깔로 출시됐던 립카는 제품력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박 대표는 디벨롭 과정을 거친 후 다시 출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박 대표에 따르면, 현재 미국과 싱가포르에 있는 VC가 관심을 보이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해외에서 더 큰 확장을 이루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최근 박유빈 대표는 브랜드 확장의 일환으로 ‘깐 달걀 비누’로 불리는 세안비누인 ‘에그솝’을 선보였다. 이 제품을 개발하게 된 계기 역시 박 대표가 느꼈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박 대표는 “평소 모공 때문에 스트레스가 있었다. 계란 흰자 팩이 모공에 좋다고 하는데, 사실 그 과정이 굉장히 번거롭다. 세안하면서 계란 흰자팩도 같이하면 얼마나 좋겠냐는 생각에 진짜 계란 흰자를 넣어 팩까지 할 수 있도록 제품화했다”고 소개했다. 즉, 비누인데도 팩의 기능을 넣은 것이다.
현재 이 제품은 계란빵으로 유명한 카페에서 판매 중이다. 이달 안에는 달걀 모양의 석고 방향제를 콘셉트로 방향제도 내놓을 계획이다. 에그솝과 관련해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본 결과, 인테리어 관련 아이디어 제품으로까지 제품 라인을 넓힌 것이다.
2019년 6월에 창업을 시작한 박유빈 대표는 2021년 2월에 법인 전환하며 지금의 회사로 성장시켰고, 매출도 매년 2배씩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박 대표의 꿈은 ‘파우치를 확 줄여 누구나 편하게 화장품을 사용하는 세상’이다. 늘너 브랜드가 B2B 시장에도 진출해, 휴대성을 높인 콤팩트 화장품 카테고리를 좀 더 넓히는 주역이 되는 것도 박 대표가 꿈꾸는 바다. 콤팩트 뷰티 카테고리와 클래식 뷰티 카테고리의 공존은 소비자에게 제품 선택권을 확장해 준다는 의미도 있다.
그는 “요즘에는 광고비를 무조건 많이 쓴다고 해서 제품이 대박 나는 세상이 아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기본이고, 제품이 기획 단계에서부터 흥행될 만한 요소가 있어야 한다”며, “브랜드 늘너는 ‘늘 너와 함께하는 화장품’이라는 의미에서 지었다. 이름처럼 늘 같이 있는 제품, 같이 있으면 편하고 좋아서 항상 함께 하고 싶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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