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받아봐도 별거 없던데요? 괜히 돈만 썼나 봐요.”
최근 ‘정신건강’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상담’에 대한 관심이 느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은 상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차라리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진단받은 후, 관련 증상을 없애는 것이 해결책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정신건강의학과와 심리상담은 영역이 다르다. 신경정신과적 문제로 인해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야 하지만, 스트레스의 원인이 ‘마음’에 있어 이를 해결하고 싶을 때는 상담사로부터 여러 가지 심리평가와 치료 및 교육을 받는다.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마이카운슬러(my counselor) 권경애 대표는 10년간 심리상담사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시장의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해 상담의 질을 높여 대중이 가지고 있던 ‘상담’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수련’ 조차 쉽지 않은 기존 교육체계 ‘관행’을 깨뜨리다
전문적인 자격을 갖춘 심리상담사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석사학위는 기본이고, 공신력 있는 학회의 수련과정을 최소 5~7년 이상 받아야 한다. 1급 상담사의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적어도 권위 있는 학술지에 2권 이상의 논문을 등재해야만 한다.
하지만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수련과정은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문화 때문에 초·중급 상담사에겐 또 다른 고비로 다가온다. 권경애 대표는 전문적인 상담사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기존 관행을 과감하게 타파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상담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수련입니다. 교육해 줄 슈퍼바이저를 찾는 과정부터가 고난이거든요. 귀동냥으로 겨우 연락처를 알아내 수련받고, 되돌아오는 과정을 최소 15~70회 반복해야 하죠. 게다가 슈퍼바이저의 95% 이상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어 지방수련생들은 숙박까지 스스로 해결해야만 합니다.”
문제는 슈퍼바이저들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한 회당 10~15만원 하는 슈퍼비전 내내 꾸중만 듣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수련생 입장에서는 ‘내가 뭘 잘못했을까?’ 의문이지만, 묻지조차 못한다. 문제는 또 있다. 상담사들이 자격증 취득을 하기 위해서는 녹음한 상담내용을 분석해 보고서로 작성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녹취록’ 작성은 필수다. 하지만, 녹취록 작업에만 최소 5시간에서 최대 며칠까지 걸리기 때문에 오히려 수련받는 시간보다 녹취록 작성을 위해 허비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권 대표는 이런 문제들이 쌓여 상담사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시장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봤다. 이에 함께 연구하고, 배워 상담사들의 전문성을 체계적으로 키울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마이카운슬러 시스템을 구축했다.
효율적인 ‘슈퍼비전’ 제공…숨겨진 ‘슈퍼바이저’도 발굴
이렇게 해서 개발한 서비스가 ▲슈퍼비전 서비스 ▲녹취록 변환 서비스다. 2020년 8월 법인 설립한 마이카운슬러는 회사가 세워지기 전인 2019년부터 시스템 개발에 들어가, 1년의 개발과정을 거쳐 2021년 3월 정식으로 서비스를 론칭했다.
마이카운슬러 슈퍼비전 서비스는 온·오프라인 모두 가능하기 때문에 장소에 제약 없이 교육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슈퍼바이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큰 강점이다. 권위적인 분위기가 팽배한 기존 슈퍼비전 구조에서는 슈퍼바이저를 평가하거나 경력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이 못 된다. 게다가 슈퍼바이저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컴플레인을 할 수 있는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마이카운슬러에서는 슈퍼바이저의 경력을 오픈하고, 후기와 별점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런 제도는 슈퍼바이저를 꿈꿨던 이들에게도 좋은 기회로 작용한다. 지금까지는 소수의 슈퍼바이저에게 교육생이 편중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능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 있거나 슈퍼비전을 제공받는 슈퍼바이지를 만날 수 있는 인맥이 없으면 슈퍼바이저로써 활동할 수 없었던 ‘숨겨진 고수들’이 마이카운슬러 플랫폼을 통해 발굴되고 있다.
이는 교육생들에게도 크나큰 혜택이다. 좋은 슈퍼바이저를 선택할 기회는 물론, 교육비가 5~9만원대까지 다양하게 형성돼 있어 한 회당 10~15만원이었던 기존 슈퍼비전보다 낮은 금액으로 교육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녹취록 서비스도 인기다. 기존에도 녹취록을 텍스트로 변화하는 앱은 많았지만, 오타 등 기술적인 에러로 인해 활성화가 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권 대표는 마이카운슬러의 녹취록 서비스는 상담사에게 특화된 수정기능을 촘촘하게 넣었다고 말한다.
“정확도가 좋은 엔진을 사용함에도 상담 녹음이라는 특성상 오타가 있기 마련이더라고요. 상담자 중에 어미를 어눌하게 말하거나, 사투리가 있거나 말끝을 흐리면 녹음 변환의 정확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정기능을 세세하게 넣었습니다. 예를 들면, 단축키를 누르면 특정 위치로 바로 간다든지, 해당 위치에서 음성을 들으면서 수정이 가능하게 해놨어요. 화자 분리를 통해 화자의 이름을 수정하고, 화자마다 번호를 붙일 수 있어 번호만 대면 해당 위치로 찾아갈 수도 있습니다. 상담사에게 중요한 침묵 표시를 별도로 붙일 수 있는 기능도 넣었습니다.”
이외에 웹과 앱으로 호환할 수 있어서 수시로 수정할 수 있고, 한글이나 워드로 포워딩도 가능하다. 올해 말이나 내년 1월에는 좀 더 보고서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그동안 누적돼 있던 여러 회차의 보고서를 불러와 최근 회차의 부분만 정리해 하나의 보고서가 간단하게 완성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현재 마이카운슬러에 가입한 상담사는 6800명, 슈퍼바이저는 50여명이다. 매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작년 3월에 서비스 론칭해 10개월 간 매출은 1억1400만원, 올 상반기에는 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권 대표는 전년 대비 올해 매출은 약 4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상담사·슈퍼바이저·일반인 모두 행복한 ‘상담 문화’ 만들 것”
권 대표의 장기적인 목표는 마이카운슬러를 통해 많은 분야의 상담사를 한곳에 모아 양질의 연구를 체계적으로 하고, 그것이 의미 있는 값으로 제시돼 사람들을 돕는 ‘전문 상담사’를 배출하는 것이다.
“심리상담에 대한 논문, 연구를 찾아보면 몇 개의 케이스만 싣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사실 실무적인 부분에서 수련적인 데이터들이 필요하거든요. 관련 연구가 꾸준히 지속돼 많은 케이스들이 누적됨으로써 데이터들이 나와야 진짜 치료에 대한 메커니즘이 형성되고, 그것이 누적돼 실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상담자들도 특정 전문가를 찾아 치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형성될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의 상담 시장은 ‘모두 저에게 오세요’라는 분위기가 강해요. 전문가를 키울 수 있는 시장이 반드시 형성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일반인 역시 상담받고 싶어도 어디서,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권 대표는 앞으로 상담 매칭서비스를 강화해, 누구나 손쉽게 찾을 수 있는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더 나아가 향후에는 AI 스피커에 상담사를 연결해 상담사를 만날 수 있는 창구가 한정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만남의 기회를 열어주고 싶다고 희망했다.
“상담은 항상 내 옆에 붙어 있는 좋은 비서와 같습니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듯이 정신적으로, 마음이 아프면 상담받아야 하거든요. 관계, 진로, 소통, 강박, 불안 등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크고 작은 문제가 있을 때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마이카운슬러가 되고 싶습니다.”
권 대표는 상담사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개선하는데도 한몫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담사의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 이는 상담사의 국가별 연봉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미국 상담사의 경우 1억의 연봉을 받는다면, 영국·프랑스에서는 6000만~7000만원, 우리나라는 2400만~3200만원에 책정돼 있다.
상담사의 노동권 문제도 심각하다. 현재 건강가정지원센터, 청소년상담센터처럼 정부에서 운영하는 상담센터에는 1~2급 상담사들이 고용돼 있다. 문제는 건당 지급료가 터무니없이 적은 것은 물론이고, 1년을 채우지 않고 고용을 해지하고 다시 입사하는 방식으로 운영해 퇴직금 정산 의무에서 교묘히 빠져나가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한다.
중간 하도급 절차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 일례로, 기업상담을 주최하는 곳에서 케이스당 10만원을 받기로 하고 몇 만 단위로 계약했다면, 다른 상담센터에 2차 하도급을 주며 50%의 마진을 남긴다. 그러면 해당 센터에서는 운영비 명목으로 50% 떼가고, 거기에서 남은 50%의 금액만 상담사에게 돌아가는 형태다.
“상담사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 직업인데, 이처럼 열악한 노동권과 임금체계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상담사가 자기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고, 더 역량 있는 상담사로 거듭나 상담의 질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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