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플라스틱 처리 문제가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폐플라스틱을 수거·분해해 재활용하는 업체가 늘고 있고, 재생 원단 등 관련 제품도 다양하게 나오는 추세다. 수거된 폐플라스틱은 재질별로 나눠 이물질 제거 공정 후 재활용 과정을 거쳐, 재생 원단으로 만들어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오히려 환경에 안 좋은 유해물질이 나오기도 하고, 가격은 일반 옷감보다 몇 배 더 비싼 원단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주신글로벌테크 장길남 대표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해서는 폐플라스틱을 수거해 업사이클링하는 과정도 친환경적이어야 하고, 경제성도 그만큼 높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장 대표는 ‘페트병 자원화 솔루션’ 개발을 통해 폐플라스틱을 100% 업사이클링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전 세계 환경단체와 기업의 이목을 끌고 있다.
폐페트병 수거 원활히 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골몰
주신글로벌테크의 주안점은 폐페트병을 수거해 업사이클링까지 완벽하게 실현하는 것이다. 장길남 대표가 ‘폐페트병’을 타깃으로 한 데는 이유가 있다. 2018년 중국에서 폐플라스틱의 수입을 금지하면서, 한국에서 처분하지 못한 폐플라스틱이 쌓이는 ‘쓰레기 대란’이 벌어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이러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2018년 2월에 주신글로벌테크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2018년 이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폐플라스틱 문제는 심각하지 않았어요. 폐플라스틱을 수거해서 중국이나 동남아 등에 수출하면 그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중국이나 동남아국가들이 자국의 환경문제가 심각해지자 쓰레기들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우리나라는 넘쳐나는 폐플라스틱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온 거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관련 기술을 가진 기업이 많지 않았거든요. 저는 30년 이상 관련 업무를 해왔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겠다 싶어 시작하게 됐습니다.”
장 대표는 원래 플라스틱 성형기 플랜트의 임원으로 해외 60개국에 플랜트를 수출한 경험이 있었다. 이후 플라스틱을 연구하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독립했지만, 생분해 플라스틱이라는 한계성과 가격경쟁력에 실패해 회사 문을 닫아야 했다. 이후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창업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재도전성공패키지’를 통해 지금의 주신글로벌테크를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국내 폐플라스틱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1~2년 동안 전국에서 폐플라스틱을 수집하는 곳을 사전 조사했다고 한다. 그 결과, 버려진 플라스틱에서 페트병 40%, 일회용 및 배달 용기 30%, 산업용 엔지니어링 제품을 비롯해 전기제품과 장난감 등이 20%를 차지했고, 나머지 10%는 오염이 심해서 원료가 뭔지 구별도 안 되는 플라스틱 쓰레기였다. 이처럼 분리수거가 제대로 안 되다 보니 외국에서 페트병을 수입해오는 현상도 벌어졌다. 즉, 쓰레기를 수입해오는 꼴인데, 그 이유는 최근의 친환경 트렌드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장 대표는 설명했다.
“요즘에는 페트로 짠 섬유를 만들거든요. 그 원단으로 옷이나 가방, 신발을 만드는 것이 추세예요. 하지만, 버려진 페트병의 오염이 심하다 보니, 결국 수입해 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거죠. 정부에서도 이런 일을 막아야겠다 싶어 관련 법규를 만들었습니다. 재작년에는 공동주택에 폐페트병 분리수거 의무화, 작년에는 일반주택까지 확대해 이젠 전국적으로 페트병 수거는 의무화돼 있습니다.”
이에 몇 년 전부터는 폐페트병의 분리수거가 그나마 잘 되는 편이지만, 부피로 인한 용량초과 등의 문제로 투명페트병과 다른 플라스틱이 운반되는 과정에서 섞여버려 또다시 분리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주신글로벌테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부터 페트를 분쇄해 다른 것과 일절 섞이지 않는 수거기를 만들었다. 이 기기는 투명페트병의 부피를 1/30~1/50로 감소시키기 때문에 보관부터 운송량을 확대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이와 함께 페트병을 투입하면 부피를 1/5로 압축시키는 기기도 개발, 폐페트병의 보관과 운송량을 원활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병뚜껑 띠 분리기’ 개발…관련 제품 인기 급상승
거대한 부피를 자랑하는 폐페트병의 문제를 해결했어도 결정적인 것은 페트병의 뚜껑띠다. 페트병의 뚜껑띠 때문에 분리수거에 몇 가지 과정이 더 추가되기 때문이다.
현재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서는 비중분리 단계를 거친다. 비중분리는 페트병 재질이 물에 가라앉는 성질을 이용한 분리방법이다. 일례로, 수거된 페트병은 일괄적으로 분쇄가 되는데, 폴리에틸렌(HDPE)과 폴리프로필렌(PP)은 물보다 가벼워 물 위로 뜨고, 페트(PET)는 무거워서 가라앉는다. 이중 가라앉은 페트만 수거해 일명 양잿물로 알려진 가성소다로 깨끗하게 세척을 한 후, 원단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재생 원료가 더 비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장 대표는 이런 과정을 없애기 위해 뚜껑의 띠를 분리하는 기기를 개발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띠 분리기를 개발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 기기는 AI 광학센서로 페트병 뚜껑의 크기와 모양을 인식해 띠를 분리하는 원리인데, 200개 가까이 되는 생수 브랜드를 다 인식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병뚜껑의 띠 분리를 다 할 때쯤 또 새로운 브랜드가 나오고, 새로운 브랜드를 분석하는 과정을 반복해 기기 개발 과정만 2년이 걸렸다고 한다.
“병뚜껑의 띠를 자동으로 분리하면 재생 원단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재생 원단은 일반 원단보다 더 비쌀 수밖에 없는 구조였지만, 우리가 만든 재생 원단은 일반 옷감보다도 70% 더 저렴합니다. 요즘에는 무라벨 페트가 나와서 세척도 필요 없기 때문에 이런 비중분리가 더 필요 없게 됐습니다. 뚜껑의 띠도 분리가 되고, 무라벨이 많아지니 비중분리 과정을 생략해도 되니까 가격이 저렴해질 수 있는 거죠.”
이런 방식으로 경제성까지 확보하게 되자, 장 대표는 업사이클링까지 일원화되는 것이 진정한 친환경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행사 품목으로 제품 몇 가지를 만들었는데, 이 제품들이 최근 지자체와 기업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업사이클링 제품은 ▲화분·화분 받침·모종삽이 한 세트인 화분 세트 ▲플로깅 집게 ▲골프티·볼마커가 함께 들어있는 골프 케이스 ▲키링 세트 등이다. 화분 세트는 페트병 뚜껑 30개로 만들어졌는데, 각 구청에서 지역축제 때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단체 주문이 밀려들고 있고, 대기업에서도 판촉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주문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플로깅 집게는 병뚜껑 50개로 만들어졌는데, 해외의 NGO 단체에서 큰 관심을 보여 조만간 보낼 예정이다. 병뚜껑 2개로 만든 제주남방돌고래 모양의 키링 세트는 깜찍한 생김새 때문에 아이들에게 인기 폭발이다. 골프용품은 제주도를 중심으로 각 지자체와 골프장에 무료로 나누고 있다고 장 대표는 말했다.
“우리는 폐페트병 기기를 수거해 분리해서 사출성형을 하는 기기를 만드는 회사인데도, 이런 후속 제품들이 인기가 많아지다 보니 각 환경단체와 지자체 등에서 구매 요청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올 12월까지 제품 판매만 1억원 이상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지금도 전국의 40여개 단체에서 행사를 통해 모아진 병뚜껑을 모아 공장에 쌓일 정도로 많이 보내고 있거든요. 하지만, 병뚜껑으로 제품을 생산한 이유가 페트병을 분리 수거하면 이런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취지가 컸기 때문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온라인 등에서 제품을 판매하기보다는 교육용으로 계속 사용할 생각입니다.”
“플라스틱 사용이 실질적으로 줄어 드는 것이 목표”
현재 주신글로벌테크에서 만든 폐플라스틱 압축기기와 분쇄기, 병뚜껑 띠 분리기 등의 기기는 제주 김녕해수욕장, 횡성군, 고성군청 등에 총 32대가 들어서 있다. 올 연말까지 횡성군 9대, 정선군 7대, 홍천군에 4대 등이 더 들어갈 예정이다.
주신글로벌테크는 철칙이 있는데, 그건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환경교육을 하는 것이다. 장 대표는 “우리가 왜 분리수거를 해야 하는지, 분리수거를 잘하면 어떤 제품들이 만들어지는지 등을 알고 분리수거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천지 차이”라고 말했다.
올 초에는 교육용 차량도 제작했다. 이곳에는 페트병 뚜껑 띠분리기, 투명 페트병 분쇄기 페트로(PERO), 미니사출기 등을 실어 직접 시민들이 병뚜껑 띠 분리도 해보고, 분쇄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스마트폰에 앱을 깔면 교육용 차량 위치를 실시간 지도로 제공해 언제, 어디에 차량이 오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내년 5월에는 제주도의 환경단체와 환경 페스티벌을 열 예정이고, 제주도에 있는 제로웨이스트숍, 플라스틱 관련 업체들에도 기술을 이전할 계획도 있다.
주신글로벌테크의 작년 매출은 4억4000만원, 올해는 8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2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는 기계수출 계획도 있어 20억원으로 매출이 훌쩍 뛰어오를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대만, 홍콩 등 적도 국가에 수출할 계획입니다. 적도 국가는 항상 여름철 날씨여서 페트 수요가 많거든요. 그런데 물류의 벽이 높아 페트병 쓰레기 문제가 큽니다. 게다가 도시가 발전하는 단계이다 보니, 우리 기계가 들어가면 일자리 창출과 수익모델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장 대표의 최종 꿈은 ‘플라스틱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페트는 재생하는 비율이 10% 밖에 되지 않고, 대부분 소각됩니다. 우리는 나머지 90%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는 제품화 단계밖에 없습니다. 이 원료를 생활용품이나 건축자재, 석유화학 부분에 쓰일 방법을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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