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ous!” 마치 주문과도 같은 이 단어는 옐토(YELTO)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동시에 외치는 말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자는 주문이자, 비장애인에게는 ‘장애인에 대한 시선과 편견을 없애자’라는 바람이 들어 있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과의 인연으로 1년6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20년 8월 법인을 설립한 이상훈 대표는 ‘옐토’라는 캐릭터가 단순히 귀엽고, 갖고 싶은 디자인을 뛰어넘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소통 창구의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신혼여행 대신 이스라엘 봉사활동이 가져다 준 변화
이상훈 대표가 옐토라는 소셜 디자인 브랜드를 만들게 된 계기는 신혼여행이었다. 결혼을 하면 부인과 함께 1년간 해외생활을 하기로 했다는 그는 2016년 결혼을 계획하면서 “이스라엘에서는 뭘 할까?” 고민하다 버스킹을 하며 유목민과 같은 생활을 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다 NGO 단체와 연결이 되면서 봉사활동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 대표는 이 모든 것들이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결정이었고, 봉사활동을 부인에게 제안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와이프의 친오빠가 지적장애인이거든요. 걷는 것이 힘들고, 지적 수준도 유아기에 머물러 있어 와이프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오빠를 돌봐야 했어요. 이 때문에 와이프에게는 가족에 대한 양가감정이 있었죠. 결혼을 계기로 이러한 현실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텐데, 제가 장애인 시설에 봉사활동을 가자고 하니 아마도 힘들었을 겁니다. 저 또한 졸업 후 취직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해외 봉사활동을 1년이나 간다는 건 무모한 결정이었죠.”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로 봉사활동을 다녀온 것이 여태까지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손꼽는다. 이스라엘에서 그와 그의 부인이 했던 봉사활동은 자폐성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생활하며 목공이나 미술 수업을 진행하는 일이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는 변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가족에 대한 애정이 더 많아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부인 역시 봉사활동을 통해 스스로 회복이 된 느낌이라고 이 대표에게 털어놨다.
이 대표가 처음부터 사업을 기획한 것은 아니었다. 사업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아이들의 그림 전시회를 준비하면서부터였다. 예루살렘에 전시공간을 빌려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었는데, 생각보다 예술적인 심미성과 독창성이 뛰어나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이 그림들이 공유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실 봉사활동을 떠나기 전에는 장애인에 대해 크게 관심도 없었고, 더욱이 장애인 관련 일을 업으로 삼을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그림을 본 순간 뭔가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폐성이 강하게 드러나다 보니 그림에서도 독특한 개성이 묻어났거든요.”
“‘문화’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 있는 시선을 변화시킬 것”
1년간의 봉사활동을 마친 뒤 구체적으로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기 시작했지만, 막상 하려고 보니 경력이나 사회활동 경험이 전무했던 탓에 어떻게 셋업해야 할지 막막했다.
“건축학을 전공해서 어느 정도는 디자인 프로그램에 익숙했지만, 동적인 스케치는 한 적이 없었습니다. 참고할 만한 캐릭터들을 보고, 익숙해지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시대적으로도 잘 맞아떨어진 게 요즘에는 그림을 잘 그린다고 무조건 좋아해 주는 게 아니더라고요. 대충 그리는 것 같아도 친근함이 있으면 많이 좋아해 주는 것 같아요.”
1년6개월간 편집디자인 일을 하면서 스킬을 배운 그는, 봉사활동을 했던 이스라엘의 시설 관계자와 온라인으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사업 초안을 짜기 시작했다. 틈틈이 인스타그램에서 개인 작가로 활동하며 브랜딩 작업도 시작했다. 이후 사업 진전 속도를 올려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다시 이스라엘의 시설을 직접 찾았고, 아이들의 그림을 디지털 파일로 받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초기 사업 구상을 짠 그는 2020년 초에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 뽑혀 지원받으면서 1인 기업으로 시작했고, 올 초에는 고용노동부에서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았다.
그가 옐토라는 브랜딩을 세운 이유는 캐릭터만큼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도구가 드물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혼여행을 주제로 독립출판사를 통해 에세이집도 냈지만, 좀 더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려면 캐릭터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의외로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장애인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어요. 요즘에는 코로나로 인해 더욱 그렇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들과 마주쳐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아직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옐토라는 캐릭터가 중간 매개체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옐토’는 ‘옐로우 토끼’의 줄임말이기도 하고, 좋은 아이들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옐라딤토빔’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캐릭터의 생김새를 자세히 보면, 보통의 토끼들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고 이 대표는 귀띔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옐토의 얼굴 위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것을 보고 귀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귀가 아니고 모자입니다. 옐토라는 토끼는 다른 토끼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거죠. 그럼에도 생김새에 구애받지 않고, 당당하게 ‘너의 모습 그대로 눈치 보지 말고 살아가라’고 옐토는 외치고 있어요. 그런 옐토의 모습을 보고 장애인에게는 희망을, 비장애인에게는 편견이라는 울타리를 사라지게 하고 싶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다…청년층에 ‘엘토’ 정신 알려
아무리 그림이 좋고, 디자인이 눈에 띈다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대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접점을 만들 수 없을까 고민한 끝에 옐토당이라는 가상의 정당을 만들었고, 대학생으로 구성한 ‘옐토 당원’을 뽑았다. 3기 중에는 하체마비 장애인과 손이 불편해 장애등급을 받은 사람 등 총 2명의 장애인도 속해 있다. 당원이 되면 회사가 공유한 소스를 바탕으로 장애인과 인터뷰를 하며 직접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데, 이들의 첫 스타트는 전시회였다. 관람객 타깃은 캐릭터에 열광하고 좋아하는 비장애인 MZ세대로 맞췄다.
전시명은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지우자’라는 의미로 ‘지우개전’이라 지었다. 이 대표가 이스라엘에서 봉사활동 당시 만났던 친구들의 그림과 국내의 20대 발달장애인 친구들의 그림을 함께 전시했는데, 약 2주간 200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이때,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의 한 간호사가 SNS를 통해 아이들과 함께 관람의사를 밝혔고, 간호사와 아이들 그리고 그 가족이 찾아오기도 했다.
올 10월에 했던 전시는 옐토가 가을방학을 맞아 바다, 숲, 마을 등으로 떠나는데, 관람객도 옐토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함께 여행을 한다는 체험형 콘셉트로 잡았다. 관객이 직접 공간을 보고 메시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전시에는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에서 치료중인 어린이들의 작품을 전시한 공간도 특별히 마련했다. 강남에서 1주일간 진행해 300명의 관람객을 모았던 이 전시를 통해 이 대표는 옐토가 누구인지 홍보하고, ‘맞고 틀린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특별하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사업 의도가 좋더라도 수익이 없으면 운영하기 힘들다. 옐토의 수익구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스타트업 등 기업의 팸플릿이나 PPT 등 편집디자인 작업을 의뢰받아 하는 B2B 사업과, 옐토 캐릭터 사업이다. 작년만 하더라도 B2B 사업과 캐릭터 사업의 이익률이 7:3이었지만, 올해는 캐릭터 사업에 집중해 전체 매출의 50%까지 끌어올렸다.
옐토의 인기 품목은 키링과 그림일기 수첩이다. 키링의 경우, 옐토 캐릭터와 발달장애인이 그린 그림을 캐릭터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그림일기 수첩은 종이 앞면에는 그림 칸을, 뒷면은 메모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다른 곳에는 없는 제품이다 보니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해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 특히 바쁜 직장인들이 간단하게 하루 일과를 정리할 수 있어 의외로 성인들이 많이 찾는 제품이다.
이 대표는 옐토라는 캐릭터가 단순히 일러스트의 친근감과 귀여움만으로 끝나지 않고, 캐릭터가 품고 있는 숨은 뜻이 대중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과의 만남이 자주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옐토당의 당원 활동을 더 확장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고, 학교와 병원 등 타 기관과의 협력도 활발하게 기획할 예정이다. 얼마 전에는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가 주최하는 인권 관련 행사에 초청받아 캠페인을 함께 진행했다. 가톨릭대와는 주기적으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경영 수업 중 사회적기업과 학생이 팀으로 매칭해 활동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대표는 3학기 째 참여 중이다. 온·오프라인으로 미팅 후, 학생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이디어를 내면 초안을 잡아주고, 함께 테스트를 해보기도 한다.
“대중 인식 개선을 위해 이전에 했던 활동은 계속할 겁니다. 또, 옐토당 활동을 대학 연합 동아리로 풀어내도 좋지 않을까 구상 중에 있습니다. 당장 수익으로 연결되지는 않더라도 사회적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거든요. 이러한 활동들이 모이고 모여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시선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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