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희귀난치질환 환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보통 사람들의 반응은 ‘도와줘야겠다’ 혹은 ‘힘들겠다’ 등으로 나타난다. 매체에서 비치는 모습도 대개 사람들의 ‘연민’을 건드리는 영상·사진과 스토리로 점철되곤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아파서 울고, 괴로워하는 모습만이 환아의 전부라고 오해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민들레마음의 손유린 대표는 이런 ‘빈곤 포르노’는 지양한다고 못 박았다.
“아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희망차고, 발랄하고, 다채로운 면들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면들이 아이들의 그림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민들레마음의 다양한 디자인 제품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봉사활동하며, 환아와 가족의 삶의 질 개선 위해 고민하다
2019년 3월 개인사업자로 시작한 민들레마음은 늦깎이 대학생의 봉사활동에서부터 출발했다. 손 대표는 교환학생, 총학생회, 연합동아리 등 하나하나 버킷리스트를 써 내려가면서 봉사활동만은 꼭 해야겠다 결심했다. 사실, 손 대표 본인도 ‘중증 아토피’를 겪고 있는 중증질환자다. 그는 지금도 2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서 주사를 맞는다고 한다. 학업이 늦어진 이유도 질환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봉사활동을 시작한 계기와 자신의 질환은 전혀 연계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의 첫 봉사활동은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이었다. 학교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봉사자 모집공고 가운데서도 유독 ‘어린이 병원’이 끌렸다는 손 대표는 특히 봉사자의 역할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매주 3시간씩 환아들과 놀아주는 것이 주 역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런 제 마음이 달라졌어요. 첫 시간에 CPR(심폐소생술,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부터 배우거든요. 아직 한 번도 실전에서 써본 적은 없지만, CPR을 사용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이 중증희귀난치질환자였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손 대표는 의료선진국이라 생각했던 우리나라의 ‘의료복지 사각지대’를 봤다고 한다.
“어른들이 병원에 바라는 점은 적은 돈으로 치료를 잘 받는 일일 겁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경우엔 달라요. 치료를 잘 받는 것은 당연한 거고, 나중에 학교나 사회로 돌아가서 원만하게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교육을 잘 받아야 하거든요. 정서·심리적으로 안정도 잘 돼야 하고요.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선 그런 서비스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매우 드뭅니다.”
게다가 어린이병동은 보호자 중 한 명이 사회활동을 포기하고 병원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따라서 환아와 그 가족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이 절실하지만,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다. 이를 접한 손 대표는 ‘중증희귀난치질환 환아와 가족들의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민들레마음을 창업하기로 마음먹었다.
감정팔이식으로 아이들의 이미지를 불쌍하게 포장해선 안돼
하지만, 구체적인 사업아이템은 없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격이었다고 손 대표는 회상했다. 비록 무작정 창업의 세계로 뛰어들었지만, 손 대표는 두 가지 원칙만은 고수하겠다 마음먹었다고 한다.
“감정팔이식으로 아이들의 이미지를 불쌍하게 포장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보다는 아이들만의 귀여운 이미지를 가져가고 싶었어요. 두 번째 원칙은 보통 아이들은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편견을 깨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구성원으로서 문제해결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그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에서 힌트를 얻었다.
아이들의 눈과 손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어 제품은 나왔지만, 시장검증은 꼭 필요했다. 손 대표는 2019년 8~12월 사이에 서울에서 열렸던 플리마켓 중 참여할 수 있는 곳은 다 나갔다고 한다. 숫자로만 따지면 20~30군데, 장소도 ▲광화문 ▲대학교 캠퍼스 ▲신촌 ▲제기동 약령시장 ▲한강 뚝섬 등 다양했다. 그리고 각각의 매출 현황을 보고 민들레마음의 타깃층을 명확하게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손 대표에 따르면, 광화문은 가족 단위, 신촌은 10~20대, 제기동 약령시장은 70~80대로 연령대가 확연히 나뉘었고, 이에 따른 매출도 달라졌다. 신촌의 하루 매출이 40만원일 때, 제기동 약령시장은 4000원에 불과했다. 참고로 가격은 엽서 1000원, 스티커 2000원, 키링 5000~6000원이다. 이때부터 민들레마음의 제품과 마케팅 포인트는 ‘1020 여성’에 맞춰 진행하고 있다.
정서적 안정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에 순익 절반을 후원
민들레마음은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에 순수익의 절반을 후원한다.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은 아이들의 정서심리안정을 위한 놀 권리, 환아와 이별한 보호자를 위한 심리상담 등 중증희귀난치질환 환아와 그 가족의 신체적·심리적·사회적 어려움을 완화시키기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이 있는 병원은 전국적으로 열 군데다. 이마저도 세 군데에서 늘어난 것이다.
“후원을 위해 미팅을 잡고 병원 관계자를 만나면 항상 그 자리에서 ‘혹시 이것도 만들 수 있어요?’라며 제품 의뢰를 하거나,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200만원을 후원하려고 병원에 갔는데, 500만원어치의 일을 더 받아오는 거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후원도 하고, 일도 하는 관계로 맺어졌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들이 인형, 담요, 펜 등이다. 또한 국립암센터, 서울아산병원, 충남대병원 등 어린이병원의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 캐릭터 개발에도 참여했다. 캐릭터를 통해 파생된 키링, 스티커, 인형 등의 제품도 만들고, 병원 행사 시 필요한 현수막이나 배너 제작에도 참여한다.
병원 외에도 기업, 기관 등과 협업도 한다. 특히 엔터 쪽의 기업과 협업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FNC엔터테인먼트의 한 밴드와 협업을 진행했고, 임영웅 가수의 전국투어콘서트에서 선보인 키트와 굿즈 제작에도 참여했다. SK, MG새마을금고 등 기업의 기념품 및 판촉물 제작도 함께했다. 현재는 어도비와 이벤트 중인데, 2023년도 배경화면을 비롯해 민들레마음과 콜라보레이션한 키링과 스티커 등 굿즈 세트 등을 소비자에게 선물로 제공한다고 한다.
2020년 9월 법인전환 해 예비사회적기업이면서 소셜벤처인 민들레마음의 다음 행보는 중증희귀난치질환 환아와 가족을 외부사회와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손 대표는 밝혔다.
“우리가 아이들을 안 아프게 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과 보호자가 외롭지 않게는 해줄 수 있으리라 봅니다. 보통 자녀가 아프면 그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거든요. 죄책감도 많이 느끼고요. 그래서 보호자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분들을 위한 커뮤니티와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습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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