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 딸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됐어요.”
이큐포올의 ‘농가족 수어교육’ 서비스를 통해 수어를 배운 한 어머니가 이큐포올 측에 전한 말이다. ‘따뜻한 기술로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는 미션 아래 2017년 11월 설립한 ㈜이큐포올(EQ4ALL)은 아바타 수어 번역기술을 기반으로 청각장애인의 생애주기에 맞는 다양한 솔루션을 만들고 있다.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이인구 대표는 “많은 청각장애인이 수어 접근성의 부족으로 소통할 기회를 잃어버려 사회적 불평등을 겪는다. 이는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라며, “이큐포올은 다중이용시설에서 청각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수어 콘텐츠도 제작하고 있지만, 농가족 수어교육에도 힘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바타 수어 번역기술로 ‘수어’의 일상화 꿈꾼다
‘한국 수어’가 공용어 지위를 획득한 지 7년이 지났지만, 편견과 오해는 여전하다. 많은 사람이 수어가 음성언어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수어 자체가 고유한 문법과 어휘를 가지고 있으며, 음성언어처럼 자연 발생했다. 같은 영어인데도 미국과 영국의 수어가 다른 이유다.
모든 청각장애인이 한글을 자유자재로 읽고 바로 해석할 거라는 생각도 편견이다. 청각장애인의 69.3%는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영어 자막을 읽을 순 있지만, 그 뜻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이들의 대다수는 문해력에 어려움을 겪는다.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수어 사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해력에 어려움을 가진 수어 사용자 비율이 69.7%다. 이 중 42.8%는 초등학교 수준의 문해력을, 26.9%는 거의 문맹이다. 바로 이큐포올이 탄생한 배경이다.
삼성SDS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인구 대표는 어도비(Adobe), 나그라(NAGRA) 등의 외국계 기업에 근무했지만, IT 기술로 사회적 약자를 돕고 싶다는 마음에 창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특히 수어에 대한 권익이 올라가고 있음에도 청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서비스가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창업의 이유를 밝혔다.
수어 번역기술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많은 국가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키넥트(kinect) 인식 기술 및 애니메이션 기술의 한계와 문법 기반 번역의 한계로 대부분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10년대 들어와 브라질의 핸드톡(Handtalk)사와 프로데프(Prodeaf)사를 선두로 오스트리아의 사인타임(Signtime)사와 일본의 NHK 등의 프로젝트가 성공하면서 대규모 연구·실증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됐다.
아바타 수어 번역기술은 3단계로 진행된다. 수어 전문가가 번역하면 문장별 모션캡쳐 후 애니메이션 작업을 한다. 마치 아바타 영화에서 배우가 수트를 입고 연기하듯이 애니메이션 데이터로 된 수어사전을 일일이 만든다. 이를 통해 수어사전과 음성언어 사전의 매핑 데이터가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대개 A4 1장 번역에 20~40 맨데이(manday, 1인의 하루 노동량)가 소요된다.
이 대표에 따르면, 이 단계를 못 뛰어넘는 회사가 많다. 이 단계만 하더라도 10억원 단위의 자본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단계를 넘어가면 비로소 자동번역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하지만, 이 역시 수정작업을 거쳐야 한다. 구글 번역기로 한글을 영어로 바꾸더라도 다시 수정해야 하는 것과 같다. 이 수정작업은 이큐포올의 재택 근무자들이 웹으로 진행하며, A4당 2~5 맨데이가 소요된다. 모션 블랜딩 수정작업도 필수다. 수어는 연속동작이기 때문에 이 작업을 안 하면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와 같이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큐포올의 데이터 수량은 22만개다. 일본 NHK가 15만개, 유럽연합 프로젝트(EASIER 프로젝트)가 10만개, 독일의 함부르크대학교(University of Hamburg)가 8만5000개인것과 비교해보면 어마어마한 데이터다. 이 대표는 이런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번역 품질은 월등히 좋아진다고 말한다. 또, 데이터가 쌓일수록 수정할 양이 줄면 자연적으로 가격도 다운된다.
“세상의 모든 정보가 수어로 번역되는 날 오기를”
이큐포올의 아바타 수어 번역기술은 실용성을 기반으로 한다. 이 대표는 “우리는 청각장애인이 실제로 필요하다고 하는 기술을 연구한다”며, “실제로 한국농아인협회를 통해 청각장애인 30명을 매년 선정해 이해도 평가를 진행한다. 아바타 수어가 지문을 읽어준 후, 지문과 보기를 주는 식으로 진행하는데 그 점수가 90점이 넘는다. 사투리를 쓰지 않는 수도권의 청각장애인들의 점수는 거의 100점을 맞는다”며 우수성을 평가했다.
이큐포올은 수서역 고속철도(SRT)와 서울교통공사(5, 7호선) 신규 열차에서 수어 애니메이션과 자막으로 응급 안내방송을 제공하고 있고, 2020년에는 5개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체·시청각장애인의 사용을 돕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이 키오스크는 재작년에 TTA 공용표준으로 제정됐고, 최우수 표준상도 수상했다. 국내의 한 전자회사의 전국서비스센터는 이큐포올의 수어번역 프로그램을 키오스크에 탑재해 사용하고 있다.
국립과천과학관에서는 홀로렌즈(Hololens)를 통해 3D 아바타 수어의 입체성을 구현하고 있고,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항공박물관에서는 키오스크 내 수어 아바타 콘텐츠를 제공 중이다. CES 2023에서는 안내 로봇에 이큐포올의 영어 수어를 탑재하기도 했다.
현재 이큐포올은 산업통상자원부 번역엔진 R&D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의료 번역 R&D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재난 정보를 실시간으로 아바타 수어로 번역해 TV에 송출하는 시스템을 ETRI, KBS, 에어코드와 함께 개발 중이다. 이 대표는 4월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23 NAB Show에서 관련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2025년에는 음악 교육 및 향유 플랫폼도 구축할 예정이다.
이큐포올은 청각장애인 가족의 문제 해결에도 나섰다. 이 대표에 따르면, 청각장애인 아동의 90% 이상이 청인(聽人) 가정에서 태어나지만, 우리나라에는 부모와 청각장애 아동이 함께 수어를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이 전무하다. 이는 훗날 청각장애인이 문해력을 겪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에 이큐포올은 TV에 연결할 수 있는 셋톱박스에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KT스카이라이프의 사회공헌활동과 연계해 셋톱박스, 평생 무료시청권, 55인치 UHD TV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55가구에 실증 서비스 중인데, 만족도와 신뢰성이 각각 90.8과 93.3을 기록할 정도로 피드백이 좋다. 이 서비스는 작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IBC(국제방송박람회)에서 소셜임팩트어워드(SOCIAL IMPACT AWARDS)를 수상한 바 있다.
gif 파일로 수어 번역 이모티콘을 만들기도 했다. 현재 기피(GIPHY) 플랫폼을 통해 제공 중인데, 이 서비스는 4월 기준 8000만뷰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이 대표는 “모든 정보가 수어로 번역돼야 하지만, 그런 세상이 오려면 사회적 비용이 클 수밖에 없다. 기술이 그 비용을 낮출 방법”이라며, “2027년이 되면 그런 세상이 올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A4 한 장의 텍스트를 수어로 바꾸는데 3.5맨데이인데, 1맨데이가 되는 시기를 2027년으로 보고 있다. 1맨데이로 떨어지면 예산도 확 떨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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