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오래된 골목을 걷다 보면 의외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서울시 중랑구도 이런 곳이다.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좁다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주택가에 이런 곳이 있다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코지(cosy)한 분위기의 소규모 커피숍과 베이커리, 공방들을 만나볼 수 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임선영 대표가 연고도 없던 이곳에 공방을 차리게 된 것도 이런 동네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임 대표는 파워블로거와 인터넷 쇼핑몰로 초대박을 친 경험도 있었기에 어느 정도 공방 운영에 자신감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공방을 운영하며 그가 느낀 점은 ‘가장 어려운 분야’라는 것이다. 파워블로거와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로, 또 평범한 직장인에서 공방 창업자로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개척해 나가고 있는 무이솝(Mueesoap) 임선영 대표를 중기이코노미가 만나봤다.
직장 스트레스 ‘원데이 클래스’로 풀다 창업까지 결심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임선영 대표는 웹디자이너로 10년 넘게 일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디자이너 이전에 1세대 인터넷 쇼핑몰 사장, 빵 관련 파워블로거로 이름을 날리던 남다른 이력의 소유자였다. 한 길로만 올인해 걷기보다는 자신의 직감을 믿고 무슨 일이든지 돌파하는 그의 성향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호기심에 담근 ‘샛길’이 그의 인생에 많은 도움을 끼친 셈이다.
임 대표는 “대학생 때 전공을 살려 인터넷 쇼핑몰을 열었다. 주로 다루던 아이템은 옷과 스카프였는데, 너무 잘 돼서 지마켓과 옥션에서 1위도 했었다. 나중에는 코트 종류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며, “그러다 직장에 들어갔는데, 항상 마음 한구석에 미련이 남았다. 늘 꿈만 꾸다가 친구에게 동업을 제안해 수영복과 신발을 팔았다. 그 쇼핑몰 역시 초대박이 났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파워블로거이기도 했다. 빵 관련 콘텐츠를 진행했는데, 인기가 많아서 협찬도 많이 받았고, 관련 업체로부터 비즈니스 제안도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임 대표 역시 안정적인 직장인이라는 틀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결국 그에게도 심적인 위기는 찾아왔었다고 한다. 디자인이라는 업종 특성상 야근이 많고, 주말도 없이 일하다 보니 우울감이 찾아온 것이다.
임 대표는 “일만 하다 보니 삶이 피폐해지고 우울해지더라. 마지막에 다니던 회사는 스타트업이었는데, 거의 초기 멤버로 합류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실무와 관리직을 병행해야 했고, 급기야는 스트레스로 인해 몸에 이상까지 왔다”며, “가만히 있는데도 주변이 뱅뱅 돌고, 이명이 심했다. 달팽이관과 이석증 검사를 다 받아봤지만 소용없었다. 알고 보니 메니에르병이라고 하더라”라며 당시 겪었던 고충을 털어놨다.
직장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찾은 곳이 ‘비누 원데이 클래스’였다. 원데이 클래스를 하게 된 이유는 심플했다. SNS를 둘러보다 비누가 너무 예뻐서였다. 게다가 수제 비누와 디자인도 접점이 있었기에 자신의 디자인적인 감각을 비누에 넣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원데이 클래스의 매력에 푹 빠진 임 대표는 전문가반을 들으며 자격증을 준비하게 됐고, 하루에 6시간씩 7~8회차 동안 진행하던 전문가 과정을 졸업했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가 과정이 순탄하게 이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임 대표는 “사실 첫날에 포기할까 고민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수업을 듣기 전에는 디자인적인 요소만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보니 완전 화학이더라. 평생 디자인만 해왔던 나에게는 무척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연습했더니 무사히 졸업하고, 자격증까지 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건사고에 영향받는 소상공인…“남보다 빨리 움직여야”
회사에 다니면서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한 임선영 대표는 서울시 논현동에 위치한 작업실을 셰어해서 틈틈이 연습했다고 한다. 이후 자연스럽게 회사를 퇴사하게 됐고, 자신이 수제 비누를 통해 느꼈던 감정과 느낌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어 창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방을 차린다는 것이 마음 먹은 것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우선 공방 자리를 알아보는 것부터가 막막했다.
임 대표는 “공방 자리만 6개월 동안 찾아 다녔다. 그나마 출퇴근하기 편한 4호선 라인으로 알아봤는데, 거의 모든 지하철역 주변의 장소를 다 알아보고 다녔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군자나 건대처럼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 차리고 싶었지만, 막상 면목동에 와보니 예상외로 느낌이 너무 좋았다”라며 당시의 느낌을 전했다.
그가 공방 자리를 알아볼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본 것은 손을 많이 대지 않아도 되는지였다. 셀프로 어느 정도 인테리어 수정이 가능한 정도의 장소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눈썹 관련 뷰티숍을 하던 곳에 자리가 났고, 그곳이 잘 돼서 시내의 중심가로 나간 케이스라는 말을 들으니, 자신에게도 그런 ‘행운’이 오길 기대하는 마음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임선영 대표는 공방을 꾸준히 유지해 나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작년 6월에 오픈해 겨우 1년이 지났을 뿐인데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홍보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오픈 첫 달에 키즈 클래스로 공방 스케줄이 꽉 찼다. 솔직히 그렇게 잘될지 몰랐다. ‘어라? 가만히 있어도 클래스가 꽉 차네’라는 자만심이 올라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둘째 달부터 고난은 시작됐다. 작년에 집중 호우가 쏟아지면서 공방 안에도 비가 들어찼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비 피해는 없었지만, 호우로 인해 클래스 문의가 뚝 끊긴 것이다.
그는 “매출이 안 좋다 보니 우울해졌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우울하게 있는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손님이 오는 것도 아니지 않나”라며, “우울할 시간에 차라리 새로운 커리큘럼을 짜고, 예쁘게 사진을 찍어서 홍보하자는 생각을 했다”며, 새로 공방을 시작해 잘 안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울할 틈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른 공방보다 ‘핼러윈’을 형상화한 디자인의 비누를 빨리 개발해 내보였다. 반응도 뜨거웠다. 하지만, 좋았던 반응도 잠시, 작년 핼러윈 때 ‘이태원 참사’로 온 나라가 난리가 나자 잘되던 클래스 문의도 끊겼다.
이후 임 대표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남들보다 한두 달 더 빨리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자 새로운 길이 열렸다. 여의도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더현대 서울’ 측에서 문화센터에 출강해달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오는 9월에는 롯데백화점 건대스타시티점에서 커리큘럼을 짜달라는 제안이 들어와서 출강할 예정이다.
수제 비누는 건강하고 착하다…“‘유일무이’ 비누 만들고파”
수제 비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환경 호르몬에 의한 피부 민감성 문제가 커지고, 자연과 환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시작됐다. 임선영 대표 역시 예민한 피부 때문에 예전에는 비누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임 대표는 “미용실의 헤어드라이어 바람만 세게 맞아도 얼굴 전체가 빨개질 정도로 피부가 민감하다. 그러다 항상 쓰던 클렌징폼의 성분이 바뀐지 모르고 썼다가 얼굴이 뒤집어진 적이 있었다. 그것이 수제 비누를 접하게 된 계기였다”며, “나에게 맞는 레시피로 비누를 만들었더니 피부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자연 분해되는 천연성분을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도 도움을 주고, 플라스틱 사용도 줄일 수 있다. 제로웨이스트와 피부 건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예전에는 비누가 ‘받기 싫은 선물 1위’일 정도로 존재감이 없던 생활용품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향, 심미성, 패키징 삼박자를 고루 갖춘 뷰티 제품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도 수제 비누를 찾는 사람들이 느는 이유라고 했다. 실제로, 피부 건강과 인테리어 아이템으로 수제 비누를 찾는 20대 비율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심지어 고등학생들도 용돈을 모아 참여할 정도다.
임 대표는 좀 더 특별하고, 예쁜 디자인을 구상하기 위해 평소 미술책이나 전시회를 자주 찾는다고 한다. 임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도 반 고흐여서 고흐의 명화에서 착안한 디자인의 비누도 공방 곳곳에 있었다. 또한, 이미지 기반의 SNS도 즐겨본다고 한다.
무이솝의 제품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과 공방에서 판매하는데, 대중적으로 많이 팔리는 제품은 멘톨 비누다. 시원한 느낌 때문에 특히 남성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심지어 소문을 듣고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 나이대의 어르신도 인터넷으로 주문할 정도다. 클래스 수강생들의 후기가 좋아 올 하반기부터 판매에 들어가는 비누도 있다. 바로 때비누다. 세신비누로 정평이 난 이 비누는 예민한 피부의 소유자라도 샤워 뒤 보송보송해진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골프공 비누 ▲무이베어 곰돌이 비누 ▲웨딩답례품으로 인기가 좋은 쥬뗌므 비누 ▲카네이션 비누 ▲CP 디자인 비누 등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전문가반 운영해 A~Z까지 편하게 ‘경험’을 나눌 것”
임선영 대표에게는 꿈이 있다. 바로 자신이 공방을 운영하며 겪고, 느꼈던 모든 ‘경험’을 나눔으로써 공방을 차리길 원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현재 운영하는 원데이 클래스, 취미반에 이어 올해 안에 비누 창업 & 전문가반을 개설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창업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알려주고 싶다는 포부를 내보였다.
임 대표는 “파워블로거로 인기를 얻고, 인터넷 쇼핑몰 사업자로 초대박을 쳤던 경험을 해서 그런지 공방 역시 무작정 잘될 거라 생각했었다”라며, “하지만, 공방은 내가 했던 경험 중 가장 어려웠다. 특히 마케팅이 너무 어려운 분야”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19년 12월부터 비누가 화장품법에 포함되면서 제조와 판매에 대한 규제가 까다로워졌다. 수제 비누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종류별로 성적서를 받아야 한다”며, “성적서를 받기까지 과정도 복잡하고, 오래 걸리고, 비용도 꽤 든다. 예전에 비해 수제 비누를 판매하는 소상공인이 줄어든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소상공인으로서 그만의 철칙도 전했다. 그것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임 대표는 “큰 비누업체에서 대량의 몰드 제작 의뢰가 들어오거나, 기업체에서 답례품 의뢰가 대량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하기에는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해야 할 부분은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규모에서 집중해야 할 것을 명확히 하고 이후 더 성장할 경우 B2B 비중도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또한 그는 무이솝이 사람들에게 힐링을 주는 공간이 되길 원했다. 임 대표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유일무이’에서 이름을 따와 공방 이름도 무이솝으로 지었다. 따지고 보면 비누도 사람이 태어나서 계속 사용하는 욕실 제품으로 친구와 마찬가지”라며, “실제로 수강생들이 연애 상담도 하러 오고, 옥수수도 쪄와서 수다를 한참 떨다 가기도 한다. 그만큼 이곳을 편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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