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많은 현수막은 어디로 어떻게 버려지는걸까”

현수막에 새 생명을 불어넣다… 자원순환 ㈜밴어배너 이반석 대표 

 

서울 을지로의 한 오래된 상가 안 공중보행길로 들어서면, ‘힙지로의 감성을 흠뻑 느낄 수 있는 레트로 분위기의 카페와 음식점들이 연달아 펼쳐진다. MZ들의 레트로 투어’ 성지이기도 한 이곳은 죽어가던 1970년대 건축물도 다시 젊은이들의 발길을 이끄는 핫플레이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힙지로를 이끄는 이곳에 위치한 밴어배너(BAN A BANNER)는 전시기간 화려한 패턴과 컬러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다 폐기되는 시점에 다시 감각적인 제품으로 태어나 MZ의 선택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 장소와 서로 닮아있다.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밴어배너 이반석 대표는 그냥 홍보를 위해 만들어졌던 현수막은 이제 금지하고더 낫게 만들자는 의미에서 회사 슬로건도 ‘BAN A BANNER, MAKE A BETTER’로 내걸었다, “많은 회사가 세상을 더 낫게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다짐에 공감해 주면 좋겠다우리 역시 더 많은 회사가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도록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고환경에 이로운 활동을 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졸업 후 현실적 고민에 잠시 우회스타트업 창업 도전

 

금속공예를 전공한 이반석 대표는 전공을 살려 작가 활동을 하기 위해 대학원을 준비하다 방향을 틀어 스타트업 창업을 한 케이스다.

 

이 대표는 “20살 때부터 부모의 경제적인 지원 없이 독립적으로 인생을 설계해 왔다그러다 대학원에 합격해 등록금을 내기 직전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작가로서 성공하면 학자금 대출을 다 갚을 수 있겠지만만약 그러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결혼하려면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직장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작품활동을 하면 되지 않을까 등등 온갖 고민과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고 털어놨다.

 

고민이 거듭되면서 결국 그는 취업을 선택했다삼촌이 하는 현악기 전문점에서 사무 총괄을 맡았다특히 1000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고가의 제품 특성상 출고·입고를 정확히 파악하는 업무가 중요했다미술 전공자인 만큼 악기를 복원하는 작업에도 투입됐다악기 수리와 고악기를 볼 줄 아는 눈도 길러야 했다.

 

하지만창조적인 일을 계속해 오던 이 대표는 악기 전문점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한 스타트업의 디자이너로 들어갔다디자인뿐만 아니라 온라인 홍보부터 마케팅 전반에 관련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스타트업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스타트업 지원사업이 이렇게 많구나지원서는 이렇게 쓰는 거구나 등 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또 회의 때 냈던 내 의견과 전문가가 한 조언이 똑같은 것을 보면서내가 상황을 보는 눈과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할 줄 아는 눈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공연장 앞에 쫙 깔린 저 많은 현수막은 어디로 가는걸까

 

이반석 대표는 대학 동기·후배와 의기투합해 2021년에 솔티 스튜디오를 창업했다처음에는 자본금이 없다 보니 디자인을 수주받아서 로고와 팸플릿 등을 디자인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공모전에도 나가보고아웃소싱 플랫폼을 이용해 디자인 관련 일을 따왔다그러다 서초구에서 진행하던 지원사업에 뽑히면서본격적으로 회사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예술의 전당 앞을 걸어가다 공연과 전시를 홍보하는 대형 현수막 12개 정도가 쫙 깔린 것을 봤다그때 저렇게 예쁜 현수막도 버려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걸로 굿즈를 만들어 공연장의 아트숍에서 판매하거나 자체적으로 브랜드를 만들어 판매하면 환경에도 좋고, ESG 경영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수많은 제작비용과 인력을 들여 만든 현수막은 홍보 기한이 다 됐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운명에 처한다이렇게 버려지는 현수막은 재활용도 힘들어 대부분 소각하는데그때마다 유해 물질이 배출돼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따라서 현수막 재활용은 자원순환 활성화와 환경보호를 위해 꼭 필요하다.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야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였다현수막은 그 특성상 만지면 손이나 옷에 염료가 묻어나기 때문이다우선 샘플 작업을 위해 핫멜트코팅(Hot melt coating) 방법을 사용했다현수막을 코팅지에 놓고 다림질하면 코팅지가 붙으면서 염료 가루가 달라붙어 묻어나오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브랜드명도 지었다공연이 끝난 후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어 앙코르를 외치듯이 공연과 전시에서 느꼈던 감동과 추억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품을 만든다는 뜻으로 앙코르 프로젝트라고 했다. ‘버려질 뻔한 자원을 다시 살려 새로운 것으로 재탄생’ 시킨다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일반 소비자에게도 합격점을 받았다

 

이 대표는 미니백카드지갑 등을 만들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는데오픈 30분 만에 목표금액의 100%인 50만원이 채워졌고, 2시간 만에 600만원까지 올라갔다, “인지도가 전혀 없던 상태에서 이 정도 결과물을 낸 것을 보고 좋은 스타트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상품당 평균 가격이 25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킨 셈이다엔터테인먼트사서울이랜드FC, 서울역사박물관 등 기업의 협업 문의도 늘었다.

 

상품 제작 시 코팅하는 방법도 발전시켰다이전에는 직접 코팅했지만제작 물량이 늘어나면서 PU(폴리우레탄코팅업체를 찾은 것이다하지만택배 시 현수막 롤이 분실되거나 코팅이 잘못되는 등의 문제점이 생겼다이에 코팅하는 방법을 바꾸든지코팅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 현수막을 찾던지 해결책을 강구해야 했다그래서 찾은 것이 UV 인쇄와 라텍스 인쇄를 한 현수막이다. UV 인쇄는 말 그대로 자외선을 이용해 순간 건조하는 방식이다염료가 묻어나오지 않고방수까지 되기 때문에 고급 현수막으로 불린다라텍스 인쇄는 현존하는 출력 방식 중 가장 친환경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또한방수 처리를 따로 하지 않아도 이염 문제가 없다.

 

이런 인쇄를 한 현수막을 사용하면 단가는 높아지겠지만코팅하면서 오는 제작기간과 물류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현재 활용하는 출력방식은 라텍스 인쇄다.

 

매출도 지속해서 상승했다. DDP디자인스토어에 입점하며 벨리곰과 협업하는 등 여러 기업·단체와 일하고, DIY 키트 수업도 진행하면서 첫해에 비해 3년 차에는 4~5배 이상 매출이 훌쩍 뛰어올랐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자원순환이 가능한 현수막을 만들자

 

기업은 안정화에 접어들었지만현수막을 업사이클링 하는 과정에서 마음고생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기한이 다 된 현수막은 기업 입장에서는 애물단지다 보니 버리듯 기증하는 곳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제품으로 들고 다니기 혐오스러운 부분만 크게 나와 있다거나 곰팡이가 피어 있는 현수막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이런 일들을 겪다 보니 업사이클링의 주도권을 우리가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출력도 우리가 하고현수막 개시가 끝나면 우리가 걷어와서 우리 상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적극적으로 일의 변화를 주기 위한 시도를 했다고 말했다.

 

 

이에 공연기획사와 전시기획사 등을 찾아가 기획단계에서부터 자원순환이 가능한 현수막을 만들어 줄 테니 나중에 상품화하자는 제안을 했다고급 현수막을 렌트해주는 개념이다여기에는 디자인도 포함된다.

 

그래서 올해 7월 새로 탄생한 기업이 밴어배너다금지하다라는 뜻의 영단어 ban을 사용해 버려지던 배너가 아닌출력단계에서부터 특별한 배너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솔티스튜디오 시절에는 출력된 현수막을 걷어왔지만앞으로는 밴어배너가 출력한 것에 대해서만 제품을 제작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이렇게 되면 디자인출력상품제작의 각 단계에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3WAY 구조도 가능하다.

 

이 대표는 기업들이 현수막을 디자인해서 제작해 출력하고 설치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에 비용이 발생했던 것을 통합으로 해주는 것이라며, “아무래도 출력방식이나 소재 자체가 비싸다 보니 되도록 총생산 금액은 이전과 비슷하도록 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디자인과 출력단계에서부터 우리가 참여함으로써 현수막 출력 때부터 재활용될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자는 것이 기본 취지라며, “시작 단계에서부터 환경적으로 이로운 활동일까 생각함으로써 단순한 새활용재활용의 의미를 넘어 자원순환을 하겠다는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밴어배너 제품의 가장 큰 강점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이라는 점이다오는 10월에는 토트백크로스백지갑, DIY 키트 등을 새로 제작해 내놓을 예정이고하반기에는 크라우드펀딩도 진행할 계획이다솔티 스튜디오 시절의 경험상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판매율이 2~3배 높았던 점을 감안해 을지로의 사무실도 매장으로 꾸밀 계획이다.

 

이 대표는 이곳이 유동 인구가 꽤 있어서 제품을 진열하기에 좋다그리고, DIY 체험장으로 꾸며 카드 지갑과 키링 등을 만들 수 있는 클래스도 열고특정 시간에 텀블러를 들고 오면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도 열 예정이라며, “추후에는 현수막 원단을 활용한 의자나 조명 등 라이프 스타일 전반으로 확장하려고 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또한 그는 버려지기만 했던 현수막을 제대로 잘 버릴 수 있는 현수막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며, “홍보해야 하니까 만들었고기간이 끝났으니 버리는 게 당연했던 현수막에서 제작단계에서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싶다고 강조했다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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