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가 등장함으로써 콘텐츠 소비부터 생산 방식까지 미디어 산업 전반에 걸쳐 많은 변화가 일어났잖아요? 하지만, 전기산업 분야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바뀐 게 없습니다. 그래서 IT 기술을 활용해 에너지 분야에 혁신을 일으키고 싶습니다.”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식스티헤르츠(60Hertz) 김종규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친환경 에너지인 재생에너지가 확산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IT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고, 소비자에게는 ‘재생에너지 선택권’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그만큼 정확한 재생에너지 예측모델이 필요하다.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한눈에 알려주는 ‘햇빛바람지도’를 개발해, 국내 재생에너지 확산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 식스티헤르츠 김종규 대표는 앞으로 국내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위한 RE100 지원을 더 적극적으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생에너지 선택권’은 기업·개인의 권리이자 경쟁력”
컴퓨터와 생명공학을 복수전공한 김종규 대표는 대안기술이라고도 불리는 ‘적정기술’을 통해 저개발 국가의 현실에 맞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이후 대학원에서 바이오인포매틱스(bioinformatics)를 공부한 그는 친구들과 희귀질환자에게 전장 유전체 분석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디어로 비영리 단체를 설립, 아쇼카재단과 아시아 소셜벤처 경진대회(SVCA)에서 수상하는 등 업계에서 관심을 받았다.
이후 태양광 IT 회사의 창업멤버로 활동하던 그는 2010년대 중반, 재생에너지 강국인 독일로 유학을 떠났고, 한국과 독일을 오고 가며 양국의 에너지 환경 차이를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이미 독일은 재생에너지가 사회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있었고, 서비스도 다양했다. 베를린만 하더라도 매우 많은 상품이 있었고, 소비자가 스스로 전기공급회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며, “당시 난 재생에너지만 골라서 썼다. 사용법도 쉬워서 인터넷으로 계량기 번호를 입력하고, 에너지 종류만 선택하면 예상 사용량을 기준으로 정액 과금을 내기만 하면 됐다. 예상 사용량보다 더 쓰면 연말에 더 지불하면 되고, 덜 쓰면 돌려받을 수 있어 편리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에너지를 선택해 사용하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다. 석탄 화력으로 발생하는 에너지를 쓰기 싫다는 사람의 실천적 의지를 실현해 주는 것 역시 권리라고 생각한다”며, 에너지 ‘자율권’에 대한 국내 시장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관측부터 예측 사용까지 원스텝…재생에너지 사용 촉매제
이런 김 대표의 고민과 가치관이 융합해 탄생한 기업이 에너지 IT 소셜벤처 식스티헤르츠다. 그의 관심이 에너지 분야로 옮겨오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에너지야말로 IT 기술이 가장 절실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수요와 공급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특성상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진다는 점, 전국적으로 소규모의 발전소가 분산돼 있다는 점 때문에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관리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식스티헤르츠의 핵심적인 역할이다. 식스티헤르츠는 가상발전소 기반의 소프트웨어를 제작한다. 기업이 RE100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시뮬레이터를 제작하기도 하고, 특정 지역의 발전량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도록 맵 형태로 제공하기도 한다.
그 기술의 중심에는 ‘햇빛바람지도’가 있다. 햇빛바람지도의 핵심기술은 기상 데이터와 AI 기술을 활용해 발전량을 예측하는 것으로, 전국에 산재해 있는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통합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국내 최초의 플랫폼이다. 국내 8만여개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지도 위에 표시하고, 현재와 미래의 발전량을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햇빛바람지도를 만들기 위해 먼저 한 일은 공공데이터를 잘 결합해 공개된 모든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사실 이전만 하더라도 이런 데이터를 수집해 집대성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이 활동만으로 ‘공공데이터 활용 우수사례’로 꼽혀 2021년에 대통령상을 받았다.
햇빛바람지도는 정보의 공개와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발전량 예측에 애를 먹었던 기업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이런 편리성과 신속성 덕분에 한전, 중부발전, 카카오, 현대건설, SK텔레콤과 같은 전력거래소, 발전사, 일반기업 등 약 3000곳이 이 서비스에 가입돼 있다.
이렇게 가입한 기업을 대상으로 재생에너지 공급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중간 다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를 구매하길 원하는 기업이 식스티헤르츠에 의뢰를 해오면, 에너지를 판매할 의사가 있는 발전소를 찾아준다. 거래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여러 서류작업도 대행해 준다. 더불어 발전량을 예측해 주는 소프트웨어 판매도 하고 있다. 발전사라 하더라도 시시각각 변하는 발전량 예측을 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전에는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려면 기업이 발품을 팔아야 했다. 그걸 우리가 대신하는 대행사인 셈”이라며, “이를 통해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쉽고, 더 많이 사용할 기회를 부여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에너지를 쉽게 사고, 팔 수 있는 플랫폼으로 거듭날 것”
2020년 11월에 설립한 식스티헤르츠는 태양광, ESS, EV 충전기 등 다양한 분산 전원을 관리할 수 있는 통합관제시스템으로 2023년 CES 혁신상을 받는 등 에너지 분야에 돌풍을 일으키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매출도 매년 2배 이상씩 커지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3년차 스타트업으로는 이례적으로 작년에는 흑자전환에도 성공했다. 이에 힘입어 식스티헤르츠는 또 다른 IT 서비스인 ‘월간햇빛바람’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월간햇빛바람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월 구독형식으로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를 구매할 수 있도록 만든 서비스”라며, “누구나 온라인으로 구독 신청하면 매월 과금해 재생에너지를 대신 구매해 주기 때문에 작은 규모의 회사들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식스티헤르츠가 이런 서비스를 만든 이유는 재생에너지 구매 행정절차가 복잡해 관련 지식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대기업도 재생에너지를 쉽게 쓰기 어려운 구조다. 이유는 재생에너지도 부족할뿐더러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도 없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기업의 99%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기후위기 해결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더 나아가 김 대표는 향후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력회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에너지의 공급과 수요가 균형상태를 이뤄 가장 안정적인 상태일 때 60헤르츠가 된다. 식스티헤르츠는 이런 기업의 설립 취지를 잊지 않고, 국내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위한 RE100 지원을 더 적극적으로 펼칠 것”이라며, “더불어 해외시장 진출도 노리고 있다. 또, 장기적으로는 전력을 공급하는 한전처럼 재생에너지만 공급하는 전력회사가 되고 싶다”고 희망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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