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가격 잡고 ‘프리미엄 우리 술’ 대중화 간다

자연과 지역사랑 업은 탁주…운정 양조장 송인식 대표 

 

고층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선 신도시. 그것도 주거단지 한가운데에 위치한 막걸리 양조장은 생소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양조장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올드함은 온데간데없고, 붉은 벽돌의 세련된 외관과 과학적인 설비가 돋보이는 내부 구조는 지역민의 자부심이 가득 찬 사랑방과 같은 존재로 발전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이곳에서 운정 양조장(Unjeong Brewery)을 운영하는 송인식 대표는 ‘임대료 낼 수 있는 거 맞죠?’, ‘없어지지 않고 오래오래 우리 동네에 계속 있어 주면 좋겠어요’라는 주민들의 간절한 피드백을 끊임없이 듣는다고 한다. 

송 대표는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신도시 특성상 외지에서 온 주민이 많다. 그들이 고향 친구나 가족을 만나러 갈 때 ‘우리 동네 양조장에서 만든 막걸리’라며 자랑스럽게 소개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힘이 난다”며, “지역의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품질과 맛, 가격 모두 놓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고깃집→양조장 ‘변신’…프리미엄 막걸리의 기준을 세우다

지금의 운정 양조장은 하루에 2만병까지 생산할 수 있는 대량 생산설비를 갖춘 곳이지만, 2017년까지는 고깃집에서 직접 빚은 술을 판매하던 음식점이었다고 한다.

송인식 대표는 “소규모 주류제조면허를 취득해 직접 만든 안주와 직접 빚은 술을 페어링해 서비스했다”며, “그러다 우리 술에 대한 R&D 설비를 늘려 연구개발을 하면서 이를 대량생산에 적용해 볼 기회를 만들고 싶어 양조장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양조장 곳곳에는 고깃집을 했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실제로,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테이블이 양조장으로 들어갈 때 썼던 문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처음 양조를 시작했던 초심의 흔적을 남겨두고 싶어서라고 한다.

당시 송 대표가 여러 양조장을 찾아다니며 우리 술을 공부하는 동안 업계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달지 않은 우리 술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우리 술을 대하는 고객들의 반응은 달랐다. 막상 송 대표가 달지 않고 드라이한 우리술을 만들어 손님에게 내보이면 ‘너무 독한 거 같다’, ‘쓰다’와 같은 부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아스파탐, 사카린 같은 합성 감미료를 사용해 단맛을 낸 공장 막걸리 맛에 길든 고객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탁주(막걸리)에 기대하는 맛이 있는 것 같다”며, “고깃집을 운영하면서 손님에게 직접 만든 술을 서빙하면서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과정들이 우리 술에 대한 대중성과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됐고, 소비자의 기호와 선호도를 판단할 수 있던 기회가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에 좀 더 건강하게 단맛을 낼 방법에 대한 연구를 거듭한 결과 지금의 운정 양조장의 막걸리를 탄생시켰다.

송 대표는 “감미료, 보존제, 증점제와 같은 합성첨가물을 넣지 않은 대신 원재료인 쌀의 함량을 시중 막걸리보다 3배 이상 높이고, 완전 발효를 시켜 쌀이 가지고 있는 단맛을 끌어내는 제조법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양조가 아닌, 예전부터 있어 왔던 전통 가양주 형태의 제조 방법을 현대적으로 보완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막걸리 맛이 진해지고, 쌀에서 나오는 깊고 눅진한 단맛을 자아낸다. 

이는 막걸릿병만 봐도 알 수 있다. 운정 양조장의 막걸릿병을 살펴보니 일반 마트에서 파는 막걸릿병보다 밑에 깔린 고형분의 비율이 현저히 낮았기 때문이다. 쌀의 함량이 높다는 증거다. 

술을 발효시키는 기간도 20일 이상으로 높다. 술에서 나오는 좋은 풍미와 향은 저온에서 많이 포집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운정 양조장은 저온에서 오랫동안 천천히 발효를 시킨다. 즉, 생산량은 포기하더라도 품질은 포기할 수 없다는 굳건한 그의 다짐에서 비롯된 제조법인 것이다.   

그러며 그는 “예전에는 막걸리 공장의 공장장이 되려면 적어도 20~30년은 걸렸다고 한다. 항아리를 만져보며 온도를 확인하고, 냄새로 술을 거를 때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등 모든 것이 관능과 경험에 이뤄졌던 시기”라며, “나는 우리 술을 공부하고 업계에 발을 들인 지 10년 정도 됐다. 이 시간이 길다면 길 수 있겠지만, 평생 양조업에 바쳐온 장인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이화학적인 분석을 통해 알코올 도수, 경도, 산도, 온도 등의 분석 지표를 냈고, 여러 가지로 실험하고 분석하면서 다양한 데이터를 가지게 됐다. 이게 우리의 큰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운정 양조장의 제조설비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90ℓ짜리 발효조에 술을 빚어 실험과 분석을 한 뒤, 균일하게 결과가 나오는 것이 확인되면 600ℓ짜리 대형 발효조에 400~500ℓ의 원액을 대량으로 생산한다. 발효조 안에 설치돼 있는 꼬불꼬불한 원형의 냉매사관이 바로 온도를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는 “술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열이 발생한다. 특히 대량으로 한 번에 빚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효모는 열에 약해서 30℃ 이상 온도가 올라가면 효모들이 사멸하면서 술이 망가지게 된다”며, “이 냉매사관 속으로 차가운 물이 들어가 술을 식혀주는 역할을 한다. 즉, 내가 원하는 온도로 제어하고, 균일한 온도에서 발효시키기 위한 설비”라고 소개했다.

MZ 세대가 먼저 알아봐 준 막걸리의 다변성

송인식 대표가 우리 술 업계에 발을 들이기 전에는 커피를 볶아 카페에 납품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원재료를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어 퀄리티까지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송 대표는 “생두의 가격이 올라가면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유는 작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크래프트 맥주도 같은 상황”이라며, “그러다 보니 원자재를 통제할 수 있는 게 큰 메리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술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쌀 소비량이 하락하면서 쌀이 남아도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쌀 소비량이 가장 많은 분야는 식음료 분야다. 첫 번째 업종이 떡이고, 두 번째로 많은 업종이 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업종이 최근 MZ에 가장 관심을 받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는 “불과 7~8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술을 가리키며 사양산업이라고 했다”며, “그러다 해외에서 이슈가 되면서 우리나라에 역으로 붐이 일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다”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우리 술이 자체 붐업되고 있는 분위기를 전했다. 

송 대표에 따르면, 현재 막걸리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계층은 30대 전, 후의 여성이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나이대가 젊어지고, 유행에 민감한 계층이 선택하다 보니 막걸리를 마실 때도 여러 변주를 통해 막걸리의 다양한 면모를 끌어낸다.

그는 “맛이 진하다 보니 술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여성은 칵테일 기주처럼 사용하기도 한다”며, “탄산수를 섞어 하이볼처럼 먹거나, 과일청을 섞어 부드러우면서도 다양한 맛을 만들며 좀 더 힙하게 막걸리를 즐기기도 한다”고 뿌듯해했다.

이외에도 그는 산업 전반적으로 우리 술이 젊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현재 송인식 대표는 양조장 운영 외에 한국주류종합연구소의 이사로 근무하며 다른 양조장의 교육 및 컨설턴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가양주연구소와 막걸리 학교 등 교육기관을 통해 후배 양성을 위한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이와 함께 프리미엄 막걸리를 제조하는 양조장이지만, 생산설비를 완비하지 못한 곳의 제품을 OEM으로 생산하는 역할도 한다. 자체 생산과 OEM 비율을 따져보면 6:4 정도다. 

송인식 대표는 “예전에는 양조장을 준비하는 사람 중 대다수가 퇴직 후 귀농하거나 고향으로 내려가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연배 많은 분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전체적인 연령층이 젊어졌고, 그러면서 개성 있고 특색있는 제품이 많이 나오면서 시장도 활성화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파주 지역의 대표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

송인식 대표는 운정 양조장이 ‘지역의 사랑방’과 같은 공간이 되길 희망했다. 즉, 단순히 제조업으로 술을 판매하는 것 이상의 문화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운정 양조장은 파주 DMZ 민통선에서 나는 쌀로 술을 빚는다. 수입쌀이나 오래 묵은 가공류쌀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지역에서 나는 좋은 농산물과 원재료를 이용해 지역 친화적인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의지다. 이를 통해 지역 농가소득에도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

그러며 우리 술 발전을 위해서는 시장의 파이 자체가 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인식 대표는 “우리 술 시장이 더 커지려면 품질과 맛은 기본이고 가격도 중요한 요건”이라며, “해외의 데일리 와인을 보면 매우 저렴한 가격대부터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우리도 더 많은 사람이 편하게 와서 고품질의 막걸리를 마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판매처도 넓힐 계획이다. 현재 운정 양조장의 막걸리는 양조장에 와서 구매하거나 택배로 주문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아니면 전통주 전문점이나 보틀숍에서 마시는 방법뿐이었다. 이에 온라인을 통한 주류 판매자격을 취득해 올 하반기부터는 온라인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우리 술의 대중화를 위해 시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기획 중이다. 우선, 파주 중앙도서관에서 양조와 술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내는 문화 강의를 준비하고 있고, 양조장 안에서는 원데이클래스와 심화과정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더 나아가서는 시민들과 직접 만든 술로 포트럭 파티도 즐길 수 있는 양조장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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