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도 밸류업 발목잡는 재벌체제 지적했는데

상법 개정 등 지배구조 개선 대책은 보이질 않는다 

 

한국거래소가 코리아 밸류업 지수의 구성종목을 발표했는데, 공교롭게도 이날 외신에서 한국의 밸류업에 대해 한계점을 지적하는 보도가 나왔다. 밸류업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재벌체제라는 평가인데, 한국 정부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방안과 달리 유독 상법개정 등 구조개선 대책은 뒷전으로 밀리는 분위기다. 

24일 한국거래소는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해당하는 100개 종목을 공개하고, 전산 테스트가 완료되는 30일부터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실시간 지수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총 100개 종목으로 구성된 이 지수는 2024년 1월2일을 1000포인트로 기준삼아 산정한다. 

한국거래소는 이 지수의 구성종목으로 시장대표성, 수익성과 함께 주주환원과 시장평가를 강조했다. 최근 2년 연속 배당 또는 자사주 소각을 실시한 기업과, PBR(주당 순자산비율) 순위가 전체 또는 산업군내 50% 이내인 기업으로 지수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밸류업 지수는 지난 2월 정부가 발표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의 일환으로 개발됐다. 당시 금융위는 “주주가치 제고 우수업체 등으로 구성된 지수·ETF 개발”이란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마련해, 상장사들이 스스로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실행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취지였다. 

정부가 밸류업에 나선 이유가 있다. 정부는 ‘자본시장 체질개선을 위한 정책과제 추진 방향’에서 “우리 기업의 자본효율성은 주요국 대비 낮고, 주가도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일본 도쿄거래소의 시장개혁 방안을 참고해 밸류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취지를 보면 자본시장의 활력으로 작용해야 할 것 같은 프로그램인데, 이에 대한 시장의 분위기는 뜨겁지 않다.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한가지 중요한 지적이 월스트리트 저널에 나왔다. 최근 이 매체에 실린 ‘한국이 일본의 시장개혁을 카피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기사는 “수익률은 개선될 수 있지만 삼성·현대 등 재벌의 힘으로 인해 이익이 제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사는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인해 “따기 쉬운 과실”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재벌이라 알려진 대가족이 통제하는 기업제국”이 의미있는 구조변화에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재벌체제가 꼽힌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게다가 정부 역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정부가 자본시장 체질개선을 위한 정책과제 중 하나로 “회사법 제도의 근간인 상법 개정을 통해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제도보완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상법개정의 목적으로는 “이사의 손해배상 책임 구체화 등 이사의 책임 강화, 전자주총 도입 등 주총 내실화” 등을 들었다. 재벌체제의 견제받지 않는 운영을 막기 위해 상법상 이사가 주주에게 책임지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다른 밸류업 지원이나 자본시장 개선과제와 달리, 상법개정은 도통 진척이 없다. 금융당국 주요인사들이 간간히 이사의 책임 강화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지만, 정부가 상법개정이나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어떤 행동에 나섰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고 있다. 

정부가 야심차게 기업 밸류업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는데, 재벌체제를 방치하고서 자본시장 선진화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가 아니더라도 널리 알려진 바다. 정말로 기업 밸류업과 자본시장 체질개선에 진심이라면, 이미 국회에 발의돼 있는 다수의 상법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 관련 법안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히고, 국회 통과를 최우선적으로 실행해야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인 재벌체제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닌만큼,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상법개정 과정을 보면 기업 밸류업이나 자본시장 체질개선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진심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법개정이 지지부진하다면, 정부가 공언한 주주권익 보호 등등이 모두 허언에 불과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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