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대법원은 인천항 갑문 보수공사 중 시공사 소속 근로자가 사망한 사건으로 인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소된 인천항만공사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대상 판결로써 대법원은 관계수급인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하는 도급인과 해당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건설공사발주자를 상호 구분하는 판단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과 건설공사발주자의 구별 실익
구 산업안전보건법(2019. 1. 15. 법률 제16272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은 도급사업 시 안전·보건조치에 관해, 사업의 일부 또는 전문 분야 공사 전부를 도급주는 사업주 중 그 사업주의 근로자와 수급인의 근로자가 같은 장소에서 작업하는 경우에 한해 도급 사업주에게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를 할 의무를 부과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형으로 처벌하되,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산업재해 발생위험이 있는 장소에서 안전·보건시설의 설치 등 고용노동부령이 정한 산업재해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에는 도급 사업주를 가중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반면 개정된 현 산업안전보건법(2019. 1. 15. 법률 제16272호로 전부 개정된 것)은 ‘도급’의 의미를 명칭에 관계없이 물건의 제조·건설·수리 또는 서비스의 제공, 그 밖의 업무를 타인에게 맡기는 계약을 말한다고 정의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도급인에 해당하는 사업주로 하여금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자신의 근로자뿐만 아니라 관계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하여도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하도록 규정했다. 자신의 사업장에서 작업하는 관계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하는 도급인의 범위를 대폭 확대한 것이다.
한편, 개정된 현 사업안전보건법은 도급인의 범위에서 제외되는 ‘건설공사발주자’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건설공사발주자란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자로서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지 아니하는 자를 말한다. 다만, 도급받은 건설공사를 다시 도급하는 자는 제외한다’라고 정의하고, 산업재해 예방 조치의무를 부과한 바, 건설공사 현장에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관계수급인의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사업주 중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 자는 도급인에 해당해 그 근로자의 사망에 관해 형사책임을 부담하게 되나, 그렇지 않은 자는 건설공사발주자로서 위와 같은 형사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 해당 여부의 판단 기준
따라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 도급과 관련한 안전·보건조치 의무 및 그 위반에 따른 형사처벌 규정의 해석에서는 ①위와 같은 산업안전보건법의 규정 체계나 입법 경위, ②개정법상 도급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는 수급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와 중첩적으로 부과되는 것으로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관계수급인 근로자 사망에 관한 형사처벌 규정을 신설한 것은 종래 도급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한정적으로만 인정하고 그 의무 위반에 대하여도 제한적으로 형사처벌하던 것에 비하여 의무 인정범위를 확대함과 함께 그 위반 결과인 사망사고에 대한 도급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여 도급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예방함으로써 근로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적 결단이라는 점, ③다만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건설공사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도급인의 범위를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는 자에 한정한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사망한 관계수급인의 근로자와 관련해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상 형사책임을 부담하는 도급인에 해당하는지는, 도급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시행하는 건설공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재해 예방과 관련된 유해·위험요소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도급 사업주가 해당 건설공사에 관해 행사한 실질적 영향력의 정도, 도급 사업주의 해당 공사에 대한 전문성·시공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대법원은 위와 같은 기준을 근거로 ①항만 갑문의 유지·관리는 인천항만공사의 주된 설립 목적 중 하나로, 항만공사가 갑문 보수공사의 설계, 시공, 감리 등 준공까지의 전 과정을 기획하고 설계도면을 직접 작성하였으며 수급업체의 보수 공정률을 매주 점검한 점, ②인천항만공사는 갑문 운영·관리 및 갑문시설물 유지보수를 주업무로 하는 전담부서인 갑문운영팀을 두고 정기적으로 점검 업무를 수행한 점, ③인천항만공사는 자본금 5조원에 달하는 거대 공기업인 반면 시공사는 자본금 10억원, 상시 근로자 약 10명에 불과한 소규모 기업인 점 등을 종합해, 인천항만공사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진행된 갑문 보수공사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산업재해의 예방과 관련된 유해·위험 요소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갑문 정기보수공사에 관한 높은 전문성을 지닌 도급 사업주로서 수급인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인천항만공사는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른 건설공사 시공자격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갑문 정기보수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는 자로서 단순한 건설공사발주자를 넘어 수급사업주와 동일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중첩적으로 부담하는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산업재해 예방과 관련된 유해·위험 요소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지 여부를 중점적인 기준으로 해 규범적인 관점에서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 해당 여부를 판단하고 있는바, 시공사로 하여금 전적으로 모든 작업과 안전보건조치를 스스로 하도록 한다고 하더라도 관계수급인에 대한 의무를 면하게 된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재해 예방을 위해 가능한 절차와 상당한 조치를 이행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법무법인 청향 윤희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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