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이 기술을 탈취당했을 경우, 기술탈취 피해기업이 손해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문가에 의한 현장 사실조사 등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기술탈취 입증 및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를 현장조사 등을 통해 조사·수집해 증거로 활용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박희경 법무법인 경청 변호사는 더불어민주당 김남근·김동아·박민규·박희승·송재봉·오세희 의원과 을지로위원회가 최근 개최한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을 위한 입법정책 토론회에서 이를 제안했다. 그는 기술탈취 근절 및 기술보호를 위한 법적 제언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현행 증거제도로는 기술탈취로부터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등을 보호하는데 한계가 있는 만큼 한국형 디스커버리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거래 스타트업 50% 기술탈취=2022년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술보호수준 실태조사’에 따르면, 혁신형 스타트업이 대기업과의 투자 및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성장기 과정에서 절반(50.0%)이 기술탈취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중소기업의 47.4%가 침해가 발생한 6개월이 지나 침해 사실을 인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분쟁 초기단계에 법적 대응수단도 부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함께 중소기업이 소송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경우 약 2600만원의 비용도 발생하고, 1심 기준으로 평균 234일의 소송기간이 소요돼 피해기업은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밖에 없다.
중소기업의 기술탈취 사건이 이슈화되면서, 국회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를 기존 3배에서 5배 이내로 상향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상향만으로는 기술탈취 피해기업의 피해 복구 및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
◇현행 증거제도로는 기술탈취 증명 한계=문제는 소송과정에서 기술을 탈취한 기업이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자료제출 등을 거부하면 현행법상 이를 강제할 수 없어, 기술탈취 피해기업은 손해를 입증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현행 증거제도인 문서제출명령, 증거보전신청 등의 제도는 실무상 문서제출명령의 대상문서나 구체적 침해 행위 등을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고, 양 당사자가 보유하고 있는 분쟁 기술에 대한 증거목록 자체에 대한 접근이 상호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박 변호사는 따라서 “기술침해 사건은 침해기업의 지배 하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결국 전문가에 의한 현장 사실조사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기술탈취 피해소송에서 입증이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피해기업으로부터 제공된 영업비밀, 기술자료 등을 ‘침해한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므로 상대방 지배영역 내 침해의 직접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미국의 특허기술 소송은 디스커버리 제도 활용을 통해, 분쟁의 90% 이상이 정식 재판 전에 해결되고 있다. 미국형 디스커버리 제도의 경우 그 과정에서 투입되는 변호사 등의 선임비용 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법원 등이 전문가를 지정해 디스커버리 절차(현장조사 등)에 참여하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중소기업 기술침해 사건에 대해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 양 당사자가 충분한 증거를 공유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술의 난이도와 복잡성을 고려해 기술전문가 등 1인 이상이 동행해 현장을 조사할 수 있는 근거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는데, 전문가 사실조사 이전에 기술이해를 위해 양 당사자에 의한 기술설명회 등 별도의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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