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첨단산업 기술 경쟁 시대를 맞아 우수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이 뜨겁다. 그런데 한국은 이공계 우수인력의 해외유출이 빠르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전적인 보상은 물론이고 연구환경의 혁신 등 인재확보를 위해 손봐야 할 점이 많다. 기술창업과 엑시트(EXIT, 회수) 지원 역시 중요한 정책대응 중 하나다.
최근 한국은행이 펴낸 ‘이공계 인력의 해외유출 결정요인과 정책적 대응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이공계 박사 인력 규모는 2010년 약 0.9만명에서 2021년 1.8만명으로 10년새 두배 가량 빠르게 증가했다. 순유출 규모 데이터도 2015년 이후 바이오와 ICT 부문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외 이공계 인력 27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국내 근무 인력의 42.9%가 향후 3년 내 해외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20~30대에서는 그 비중이 70%에 달했다. 연봉 수준 등 금전적 요인이 큰 원인이었지만, 연구생태계·네트워크, 경력기회 보장 등 비금전적 요인 역시 적지 않은 비중을 보였다. 보고서는 “연구환경의 질과 경력 지속가능성 등 근무여건 전반의 제약도 해외 이직 의향 형성에 깊이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짚었다.
따라서 금전적 대응은 물론 비금전적 대응도 동시에 필요한 상황이다. 보고서는 우수인력에 대한 보상체계를 개선하는데 기업들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인적투자 세액공제의 실효성 강화 등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R&D 투자 성과를 높이기 위해 규모 확대 못지않게 ‘인재 순환형’ R&D 구조로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했다. 젊은 연구인력이 국내에서도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외 연구기관·연구자와의 교류 강화, 첨단 인프라에 대한 접근성 제고 등을 통해 R&D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 경험 인력을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는 조직 운영 구조와 유인 체계를 통해 축적된 경험과 역량을 갖춘 석학들이 국내 연구생태계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
보고서는 다양한 정책 대응방안을 내놓았는데, 그중 특히 기술창업에 대한 제언이 눈길을 끈다. “기술창업은 이공계 인재가 전문성과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의료 등 고소득 전문직에 견줄 만한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성취를 실현할 수 있는 핵심 경로”임에도, 우리나라는 불확실성 등의 영향으로 창업성공을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기술창업 촉진 역시 정부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정부가 기술창업 초기 단계의 리스크를 흡수하는 선도적 투자자이자 촉매자로 역할하고, 민간의 혁신 역량이 다양한 형태의 창업으로 전환되는 선순환적 생태계를 뒷받침해야 한다. 창업실패에 대한 재도전 지원을 강화해 실패 경험이 자산으로 축적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보고서는 “M&A·IPO 등 회수(EXIT) 메커니즘의 기능을 강화해 투자수익 실현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중요한 포인트를 제언했다.
1990년대 후반 벤처·코스닥 거품 붕괴 당시의 교훈도 잊어서는 안된다. 당시에는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 간의 불공정한 기술거래 관행이 있었고, 기술 이전·분쟁을 적절히 조정할 제도는 미비했기 때문에 벤처 생태계의 내구성과 복원력이 크게 약화된 경험이 있었다.
보고서는 “이러한 사례들은 창업 생태계가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단기자금 공급과 규제 완화뿐 아니라 공정한 기술거래 질서 확립, 기술보호 고도화 등 제도적 기반 강화가 병행되어야 함을 시사한다”고 했다. 우수인력을 위한 기술창업 촉진을 위해 건전한 창업·투자 생태계 조성이 필수적이라는 중요한 제언이니만큼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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