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000시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밸류업(Value-up) 정책’과 ‘지배구조 개선 입법’이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정책으로 자리 잡아야 하며, 무엇보다 기업의 자발적인 이행과 정책의 정교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1일 한국거래소가 개최한 ‘코스피 5000시대 도약을 위한 세미나’에서 ‘밸류업 및 지배구조 개선 입법의 성과와 과제’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밸류업과 지배구조 개선은 코스피 5000시대를 넘어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를 여는 핵심 동력”이라며 “기업의 자발적인 변화와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함께할 때, 한국 자본시장은 진정한 선진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스피 4200 돌파… 해외 투자자들, 한국 시장에 새로운 기대
최근 한국 자본시장에서는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코스피 지수가 4200선을 돌파하며 연초 대비 약 76% 상승했고, 자사주 취득과 소각 규모가 급증하는 등 주주환원 기조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황 연구위원은 “지금의 자본시장 활기는 우연이 아니라, 밸류업 정책과 지배구조 개선 입법이 만들어낸 구조적 변화의 결과”라며 “이제는 형식적 공시를 넘어 실질적 이행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블랙록,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해외 기관투자자 40여 명과의 최근 미팅에서도 과거와 다른 반응을 체감했다”며 “올해 들어 해외 기관들이 한국 자본시장에 대해 ‘기대’와 ‘관심’을 분명히 드러냈고, 이는 지수 상승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황 연구위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현상이 완화되고 있으며, 한국 시장의 할인율이 점차 하락하는 추세”라며 “이제는 코리아 프리미엄(Korea Premium)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정도로 시장 체질이 바뀌고 있다”고 평가했다.
밸류업 공시, 확산은 긍정적…하지만 지배구조개선 등 부족
2024년 5월부터 시행된 ‘밸류업 프로그램’은 상장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하도록 한 제도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5년 10월까지 총 167개 기업이 밸류업 공시를 제출했으며, 이 중 시가총액 1조 원 이상의 대형사 비중이 65.3%에 달한다. 공시 참여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전체 시장의 44.5%에 이르고, 코스피 시장만 보면 49.9%에 달한다.
자본시장연구원이 국내외 기관투자자 9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밸류업 정책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기관투자자들은 특히 밸류업 공시가 향후 주가 상승과 투자 유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황 연구위원은 “공시 수가 늘어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밸류업 공시는 ‘주주환원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지배구조 개선이나 비재무적 가치 제고 측면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며 “공시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공시 내용의 질을 평가하고, 약속한 목표가 실제로 이행되는지를 점검하는 후속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배구조 개선 입법이 자본시장 체질 개선 견인
황 연구위원은 밸류업 정책과 더불어 ‘지배구조 개선 입법’이 자본시장의 체질 개선을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2015년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약 13년간 상법 개정은 단 두 차례에 불과했지만, 2025년 하반기에만 세 차례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며 “그만큼 현 정부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사회 구성 및 의사결정 구조 개편,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집중투표제 배제 금지 등은 모두 주주 권익 강화를 위한 입법적 성과”라며 “해외 기관투자자들 또한 한국이 실질적인 지배구조 개혁에 나섰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 한계도 지적했다. 황 연구위원에 따르면, 주주총회 소집공고를 4주 전에 실시하는 기업이 28.7%에서 38.9%로 증가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2주 전에 몰려 있다. 감사보고서와 사업보고서가 주총 일주일 전에야 공개돼 기관 및 해외 투자자들이 실질적인 분석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황 연구위원은 “일본의 경우 주총 3주 전 공시가 의무화돼 있어 기관투자자들이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제도상 ‘시간의 여유’가 없다”며 “이런 구조에서는 투명한 의사결정이 어렵고, 주주권 강화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배당, 여전히 깜깜이…정관 바꿔도 현실은 그대로
배당정책의 불투명성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혔다. 황 연구위원은 “배당 예측성을 높이겠다며 정관을 변경한 기업이 많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사업연도 말에 배당 기준일을 지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관을 바꿔놓고도 이전 방식으로 회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유가증권시장 67개사, 코스닥 177개사가 정관 변경 후에도 과거 방식으로 돌아갔으며, 이로 인해 배당 예측성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며 “투자자 신뢰를 위해서는 정관 변경에 맞는 실질적 이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아 프리미엄 위해 밸류업 정책의 지속성과 내실화 필요
황 연구위원은 “밸류업 정책은 이미 자본시장에 긍정적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일회성 정책이 아닌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정착해야 한다”며 “밸류업과 지배구조 개선은 상호 보완적 정책으로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과제로 ▲기업의 자발적 주주소통 강화 ▲밸류업 공시 내실화 ▲해외 기관투자자와의 직접적 소통 확대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 지속 ▲자사주 소각·처분 공정화 제도 개선 등을 제시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는 국회에서 이미 활발히 진행 중이지만, 단순히 소각만 의무화할 것이 아니라 신주발행·스톡옵션 등과 연계한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황 연구위원은 “주주의 실질적 권한을 강화해야 기업이 진정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사 선임과 보수 승인 절차를 보다 구체화하고, 현재 한도 승인에 머무는 보수 승인을 실질적인 검토·승인 절차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이사회가 주주의 감시와 신뢰 속에서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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