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22일 이억원 금융위원장 주재로 ‘생산적금융 대전환’ 세 번째 회의를 열어 자본시장을 혁신기업 성장 플랫폼으로 만들기 위한 구체 대책을 논의했다. 주제는 혁신기업이나 벤처로 자금이 더 빨리, 더 많이, 더 안전하게 흐르게 하려면 제도와 인프라를 어디부터 고쳐야 하는가를 점검한 자리다.
이날 회의에는 벤처기업·코스닥·코넥스 협회, 대형 증권사, 사모펀드·벤처캐피털 업계, 거래소·예탁결제원 등 자본시장 핵심 참여자와 학계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정부가 큰 틀의 방향을 제시하고, 시장에서는 어디가 막혀 있는지, 무엇을 풀어줘야 투자가 늘어나는지를 구체적으로 짚었다는 점에서 단순 선언이 아닌 실행 준비 성격이 강하다.
비상장주식 전자등록, 수기 장부에서 인터넷 뱅킹으로
첫 번째 과제는 비상장·스타트업 주식을 어떻게 하면 은행 예금처럼 안전하고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느냐다. 지금은 많은 비상장기업이 주주명부를 엑셀이나 종이로 관리해 분실·위조·분쟁 위험이 크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내 지분이 정말 잘 기록돼 있는지 확인이 어렵다.
금융위는 비상장주식에 특화된 전자등록기관을 새로 허용해, 지금의 ‘수기 통장 관리’를 ‘인터넷 뱅킹’ 수준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예를 들어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한 개인·VC가 나중에 지분을 팔거나 추가 투자를 받을 때, 전자등록 시스템에 모든 거래와 지분 변동이 기록되면 주주권 증명과 법적 안정성이 크게 높아진다. 중장기적으로는 이런 인프라가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활성화의 기반이 되고, 비상장 주식 거래 자체를 더 활발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
PEF 제도개선, 문제 생기면 바로 퇴출되는 사모펀드
두 번째 축은 기관전용 사모펀드(PEF) 규율체계 개편이다. 그동안 일부 PEF가 단기 차익에 치중하거나, 불투명한 운용으로 투자자·피투자기업에 부담을 주는 사례가 지적되면서 부작용은 줄이고, 혁신기업 투자 기능은 살려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금융위는 우선 운용사(GP)가 중대한 법 위반을 한 번만 저질러도 등록을 취소할 수 있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해 책임을 크게 높이기로 했다. 쉽게 말해 운전 중 음주사고를 내면 바로 면허가 취소되는 것처럼, 시장 질서를 크게 해치는 PEF는 한 번의 중대한 위반만으로도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는 구조다. 여기에 대주주 적격성 요건, 내부통제 의무, 준법감시인 선임 등을 추가해 “규모만 큰 펀드”가 아니라 기본이 갖춰진 운용사만 시장에 남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또한 지금까지는 개별 펀드 단위로 제한적 정보만 보고했지만, 앞으로는 GP가 운용하는 모든 PEF의 자산·부채·레버리지·투자기업 정보를 한꺼번에 보고하게 된다. 예를 들어 특정 GP가 여러 펀드를 통해 한 업종에 과도하게 레버리지를 일으키고 있다면 감독당국이 이를 조기에 파악해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구조다. 동시에 투자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정보 항목을 확대하고, GP–LP 표준계약서와 운용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기업 인수 시 경영권 참여 목적과 고용 영향 등을 근로자대표에게 통지하도록 해 이해관계자 보호 장치도 강화한다.
대형 IB 모험자본, 3년간 20조짜리 혁신기업 전용 자금풀
세 번째 축은 대형 종합금융투자사업자(IB) 다섯 곳에 ‘혁신기업 전용 자금풀’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키움증권, 하나증권, 신한투자증권은 이미 발행어음·종합투자계좌(IMA) 인가를 받은 만큼, 조달한 자금을 어디에 어떻게 풀지에 대한 사회적 책무가 있다.
이들 5개사는 2025년 9월 말 기준 5조1381억원 수준인 모험자본 투자잔액을 3년 동안 15조2184억원 추가해 2028년 말 20조3565억원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구조를 보면, 예를 들어 한 스타트업이 성장 단계에 따라 자금이 필요할 때 직접투자(중소·벤처·중견기업 투자, A등급 이하 채권, P-CBO 등)를 통해 바로 자금을 공급하고, 벤처펀드·신기사조합·국민성장펀드·BDC 등 간접투자를 통해서는 여러 기업에 나눠 투자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순환시키게 된다.
눈에 띄는 점은 국민성장펀드 투자 비중이 약 27%로 가장 크고, A등급 이하 채무증권과 중소·벤처 직접투자가 그 뒤를 잇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매출은 늘고 있지만 등급이 낮아 은행 대출이 쉽지 않은 기업, 기술력은 있지만 담보가 부족한 스타트업 등이 이 자금의 주요 수혜 대상이 될 수 있다. 동시에 BDC·코스닥벤처펀드 등에 약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코스닥 시장의 장기투자 수요를 늘리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헉신기업 자금고속도로…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로 이어질까
이억원 위원장은 생산적금융 대전환이 금융회사 업무 구조만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상장 전자등록, PEF 규율 강화, 대형 IB 모험자본 확대는 각각 비상장·사모·공모·코스닥을 잇는 자본시장 파이프라인의 다른 구간을 손보는 작업이어서, 전체적으로 보면 혁신기업을 위한 ‘자금 고속도로’를 다듬는 과정에 가깝다.
다만 대형 IB의 3년 투자계획은 발행어음·IMA 조달 규모와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부는 민·관 협의체를 통해 실적과 계획을 점검하고 제도적 장애물이 있으면 추가로 손질하겠다는 입장이다.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해 스타트업과 혁신기업이 돈을 구하기 쉬워졌다는 평가로 이어질지, 향후 성과가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중기이코노미 김현성 기자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