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분쟁 막기 위한 ‘녹음 행위’는 불법 아니다

대법원, 노동위·법원에 제출하기 위한 녹음행위는 음성권 침해 아냐 

 

목소리는 개인의 고유성과 인격을 나타내는 징표다그래서 헌법은 음성권을 초상권과 같이 인격권으로 보호한다개인정보에 해당하는 자신의 음성을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게 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라고 한다.

 

 

이러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발언자의 동의 없이 상대방이 발언자의 대화를 녹음해 배포하는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을 통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그뿐만 아니라 부당하게 헌법상 보호돼야 할 음성권을 침해한 행위는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노동현장에서는 근로계약 관계에서 노동자가 사용자의 근로계약 위반 혹은 직장 내 괴롭힘 가해 사실해고의 부당성 등을 입증하기 위해 사용자와의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드물지만사용자가 노동자와의 근로계약 내용을 증명하거나비위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대화 내용을 녹취하는 경우도 있다.

 

당사자의 동의가 없다면 이러한 녹음행위는 불법행위가 되는 걸까최근 대법원 제1부는 노사 간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데 당사자 일방이 명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하였다거나 상대를 기망 또는 협박하지 않고법적 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공적 판단기관인 노동위원회나 법원에 제출하는 방식으로만 사용될 경우 음성권 침해로 인한 불법행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대법 2025다 204730).

 

사건의 경위=피고 회사는 집합투자증권의 판매 업무투자자문 업무 등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이다(피고 1회사). 피고 2는 사건 당시 피고 1회사의 대표이사로 근무했던 사람이고피고 3은 피고 1회사의 본사 마케팅부서장으로 근무했던 사람이다.

 

원고는 2020년 94일 피고 1회사와 여러 차례 기간(2022년 731일까지)을 정해 근로계약을 체결해 근로를 제공했다피고 3은 원고를 상대로 2022년 722일 원고가 근무하던 피고 1회사의 사업소를 폐점할 예정이란 사실을 통지하며근로계약 갱신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피고 3은 2022년 722일 14:13그리고 14:35경 2차례에 걸쳐 원고와의 대화 과정에서 원고의 동의 없이 원고와의 대화 내용 일체를 녹음했다이에 원고는 이 사건 녹음행위가 원고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이므로 불법행위자들인 피고들이 공동하여 원고에게 위자료를 배상하라는 취지의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사건의 쟁점=이번 사건의 쟁점은 이 사건 녹음행위가 원고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하여 불법행위로서 원고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인정되는지가 쟁점이다그 외 원고의 갱신기대권도 주요 쟁점이나 이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법원의 판단=원고는 이 사건 녹음행위의 대상이 된 대화가 원고가 사실상 해고당하는 내용으로서 일반인이라면 충분한 수치심을 느낄만한 것이고녹음된 대화 내용은 왜곡되어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 사건 녹음행위의 위법성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피고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 이 사건 녹음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되지 않으며 사회상규상 어긋나지 않는 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된다 주장했다.

 

 

원심은 2024년 1212일 판결을 통해 이 사건 녹음행위가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대한 것이 아니고 노동위원회나 법원에 제출하는 용도로만 사용된 점 등을 볼 때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부산지법 2024나 49834).

 

대법원 재판부 역시 피고의 손을 들어줬다대법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음성권이 헌법 제10조 제1문에 의해 헌법적으로 보장되는 인격권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민사소송에서 대화 상대방의 동의 없이 녹음된 파일이나 녹취록이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라는 대법원 판례(대법원 선고 2009다 37138, 37145 판결 등 참조)를 법리로 하여 불법행위의 요건을 설시했다.

 

재판부는 실체적 진실 보존 또는 자기방어를 위해 상대방 대화 녹음 필요가 있는 경우를 고려해 상대방의 동의가 없이 대화를 녹음하였다는 사실만으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판단했다또한 상대방의 명시적 반대 의사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기망 또는 협박하여 녹음하는 등 침해 방법이 부당한 경우녹음행위 자체는 부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녹음한 음성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 방송배포하는 등의 경우에는 이에 따라 달성하려는 이익의 내용과 필요성상대방이 입게 되는 피해의 성질과 정도 등에 비추어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해당 법리에 따라 이 사건 녹음행위가 피고 3이 피고 1회사의 영업점 폐점 등 입장을 설명하고 확인서를 받는 대화 과정에서 이루어졌는데 녹음과정에서 원고의 명시적 반대 의사에도 원고를 기망 또는 협박했다는 사정을 발견할 수 없는 점이 사건 녹음행위를 통해 피고로서는 근로계약 기간의 종료를 통지하며 갱신 불가의 상황을 알리는 취지에 불과하여 원고로서는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관한 것이 아니어서 원고가 입게 되는 피해의 정도가 크지 않은 점이 사건 녹음행위로 인한 녹취파일과 녹취록을 피고들이 원고와 체결된 근로계약에 관한 법적 분쟁과 관련하여 노동위원회나 법원에 제출하는 방식으로만 사용했으며 다른 목적으로 방송배포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봤다.

 

피고들이 원고와 분쟁에서 증거자료 제출로 합리적 해결을 도모할 필요가 있었고공적 판단기관인 노동위원회나 법원의 성격과 판단 절차에 비추어 녹음파일 등의 제출로 인해 원고가 입을 피해의 정도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재판부는 결국 원심의 판단을 받아들여 피고들의 녹음행위가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보고 원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판결의 의의=이번 판결은 노동현장에서 노사 간 근로계약과 관련해 위반 사항을 증명하거나 사용자의 근로기준법 위반 행위상급자의 직장 내 괴롭힘 가해 행위 등을 증명하기 위해 폭넓게 활용되어 온 상대방의 동의 없는 대화 녹음행위 및 법적 활용의 위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중기이코노미 객원=노동OK 이동철 상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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